[동아일보]납북인사 북한생활기 - 죽음의 세월 31회 1962. 5. 4
  이름 : 사무국 날짜 : 2006-12-14 18:43:00 조회 : 19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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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북인사 북한생활기 - 죽음의 歲月 31

이름 : 관리자 번호 : 62
게시일 : 2001/03/03 (토) AM 09:49:01 (수정 2001/03/03 (토) AM 09:54:00) 조회 : 21

1962년 5월 4일 동아일보에서


죽음의 歲月 31


납북인사 북한생활기


情報系統은 投獄
防空壕파다가 발부러진 文學準
同情엔 宗派의 딱지


文聖里 일대의 농가에 분산 수용된 관계(官界) 및 법조계 납치인사 刑德基, 李潭 등에 대한 재심사가 51년 9월부터 다시 시작되었다. 여기에는 金準坪, 金時明, 朴勝喆, 文學準, 朴元三, 徐光卨, 趙炳來, 金晋明, 蘇完圭 등도 끼여있었다.

주로 남한사정에 밝은 남로당계 간부와 북로당계 간부가 심사에 임하였는데 특히 과거 남한에서 수사 기관이나 정보기관에 있던 인사들을 철저히 조사하였다.

심사할 때 제일 고통을 받은 것은 金時明, 金準坪, 朴元三이었다. 金準坪은 몹시 신경이 날카로워져서 질문을 할 때마다 대항하였고 朴元三은 과거 수사기관에 있을 때 『무고한 공산주의자들을 수없이 괴롭혔고 투옥하였다.』고 심사원들이 다까세워도 입을 다물고 대답을 안 했다.

심사결과 朴元三, 金準坪은 정치보위부를 거쳐 平壤교화소(형무소)에 투옥되었다. 이 교화소안에는 납치인사들 중 수사, 정보계통에 종사하던 인사들이 대부분이었다.

나머지 인사들은 10월부터 始族면 방면의 산굴과 방공호 파기에 강제 동원되어 매일같이 중노동에 시달렸다. 어느 날 文學準이 굴을 파들어 가다 돌이 무너지는 틈에 다리를 다치고 쓰러졌다. 비명에 놀란 동료들이 삽과 곡괭이를 내동댕이치고 달려와 바윗돌을 밀어내고 그를 구해냈다. 당황한 경비원은 급히 그를 업고 병원으로 옮겼다. 한쪽다리가 부러진 것이었다. 文學準은 그곳에서 오랫동안 치료를 받았으나 그만 뼈를 잘못 이은 바람에 절름발이 신세가 되었다.

이러한 사고가 있은 후 납치인사들은 생명의 위험을 느꼈기 때문에 굴 파기 나가기를 모두 완강히 거부하였다. 얼마 후 金準坪, 金時明, 朴勝喆, 徐光卨, 趙炳來, 金晋燮, 蘇完圭, 李萬根외 십여명은 平壤 甘興里에 시설된 임시교화소로 옮겨갔다. 그리하여 이곳에 남은 것은 荊德基, 姜柄順, 李潭, 李愚卿, 白鵬濟 등 십여명뿐이었다.

11월에 접어들자 남은 이들 인사를 한 두 사람씩 광산 혹은 발전소로 보내어 중노동에 종사하게끔 배치시켰다.
荊德基와 姜柄順은 新義州방면 발전소에, 李潭, 李愚卿은 平南 新倉탄광으로 각각 보내어 졌다.

처음 李潭, 李愚卿은 중노동에 종사하였으나 그곳 職盟에서 편찬부로 옮겨준 덕택에 중노동은 면하였다. 그것은 그들의 우수한 재능을 동정한 때문이었다. 특히 그곳 광산부 지배인인 嚴圭華는 이남에서 자진월북한 자로 늘 그들을 동정하여 자기 집에 데려다 저녁도 대접하고 용돈까지 쥐어주곤 하였다.

그러나 그곳에 배치된 정치보위부원에게 탐지되어 남한출신만을 돕는 종파주의자로 몰려 다른 곳을 좌천되고 말았다. 이로 인하여 李潭과 李愚卿은 다시 중노동을 해야만 했다. 결국 李愚卿은 몇 달이 못되어 중노동에 시달린 끝에 각혈로 쓰러졌고 그 후 李潭의 손을 움켜 쥔 채 숨을 거두고 말았다. 그 후 李潭은 53년 휴전 시까지 그곳에 머물러 있어야 했다.

한편 다리병신이 된 文學準은 그 후 平壤전기공장에 잡부로 배치가 되었다. 그는 이곳에서 불구자가 된 탓도 있겠지만 비교적 일반 노동자들에게 인심도 얻고 또 인격적으로 대우도 받았기 때문에 생활은 좀 자유로웠다. 그리고 金晋燮과 朴勝喆은 平壤시외에 있는 三神탄광에 배치되어 반 노동 반 사무원으로 일하였다.

그러나 이들 납치인사들은 다만 그 날 그 날의 삶에만 시달릴 뿐 그들 눈앞에 가로놓인「죽음의 다리」를 미처 생각할 여유조차 없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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