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출자증언기] 배상하
  이름 : 관리자 날짜 : 2011-03-16 14:31:29 조회 :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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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렇게 탈주했다
-납치인사 생환기-
배상하(전 「연합신문」 편집국장)

1950년 7월 20일 서울에서 박열 선생과 같이 정치보위부로 연행된 후 다시 서대문형무소 제 3사 24호에 수감(수감자는 재무부 관리 이씨, 경찰관 김씨, 동국대학교 감찰부장 손영석)되어 9월 16일까지 70여 일을 수형 생활. 70여 일의 수형 생활은 살아서는 나갈 수 없다는 무거운 절망과 고독·단조·모욕·구타의 고통과 앞날에 대한 절망·지독한 기아·영양 부족이었다,



<전문>

고독·단조·모욕

서울에서 탈출하지 못하고 박열(朴烈) 선생과 더불어 붉은 관헌에게 붙들리고 만 것은 1950년 7월 12일이었다. 6·25 동란이 일어난 지 약 20일이 지난 때다. 붙들려간 곳은 소위 정치보위부라는 곳이었는데 남대문 통 국립도서관 바로 앞 3층인지 4층인지 붉은 벽돌집이었고, 이 집 3층 어느 컴컴한 방에서 그날 밤으로 박열 선생과 함께 간단한 취조를 받은 다음 이달 15일 밤늦게 40여 명의 동지들과 추럭 한 대에 실려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된 것이었다. 이것이 박 선생을 뵈온 마지막 밤이었다. 수감된 감방은 3사(舍) 24호였고 재무부의 관리였던 이씨, 경찰관이었던 김씨, 그리고 동국대학교 감찰부장 손영석군과 나, 이 네 사람이 9월 16일 밤까지 70여 일 동안 이 조그만 감방 안에서 매일을 보낸 것이다. 사실 내일 없는 그날 그날이었다. 왜냐 하면 재판도 없고 판결 언도도 없는 무기 징역이었기 때문이다. 굳게 닫혀 버린 감방 문이 어느 때에나 다시 한 번 열려질는지. 그래도 처음에는 설마 설마라는 가느다란 희망도 없지 않았던 것이나 열흘이 가고 스무날이 가고 달이 지나가도 또 달이 바뀌어지고 보니 이젠 살아서는 영원히 이 문 밖을 나갈 수 없을 것이라는 무거운 절망만이 남을 뿐이었다. 고독(孤獨)·단조(單調)·모욕(侮辱)·구타 등도 괴로운 일이었거니와 그중에서도 가장 괴로운 것은 앞날에 대한 절망과, 그리고 지독한 기아, 영양 부족이었다. 꼬박꼬박 하루에 세 끼 밥을 주기는 하지마는 밥이란 것은 이름뿐이요, 실은 밀을 쪄서 한 끼에 한 옴큼(약 반작)씩 그나마 잔돌이 절반이라 밀알을 손바닥에 놓고 한 개 한 개 골라 먹어야 하는 것이었다.



반동죄(反動罪)란?

그것도 모자라서 밀 알 한 개만 마루바닥에 떨어지면 서로 주워 먹기에 열이 났고 그리고도 부끄러움을 깨닫지 못하는 것이었으니 공산주의의 교화라는 것은 이러한 방식으로 물질을 위해서는 인간의 모든 양심, 모든 수치심까지 차차로 말살해 버리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지극히 단조한 이 감방 안으로도 이따금 그 단조를 깨뜨려주는 몇 가지 현상이 없지도 않았으니, 첫째로는 며칠만큼 교화라는 이름 밑에 「감방 안의 여러 동무들, 내 이야기를 똑똑히 들으시오.」라고 외친 다음 자유 진영 대한민국의 결점을 이것저것 욕질하는 한편 소위 조선인민공화국이 지상 천국임을 역설하고 끝으론 반드시 「여러분도 이 안에서 잘 교화를 받아 하루빨리 인민공화국의 충성된 인민이 되도록 노력하시오!」라고 결론하는 붉은 간수의 연설이었다. 그러면 밀알만 주어 영양 부족을 만드는 것도 교화요, 재판 없이 가두어 두는 것도 교화요, 그리고 수시로 몇 사람씩 끌어내다가 판결도 없이 총살하는 것도 교화라면 「제길헐, 교화 두 번만 받다가는 사람의 씨도 없어지겠구나!」라는 것이 손군의 입속 항거의 항변이었다. 만약 이런 소리를 입 밖으로 크게 소리내었다가는 당장에 반동 분자의 처벌 즉 까닭 없는 주검을 당하는 것이었다.
또 한 가지 우리들의 고적을 깨뜨려주는 것은 아침마다 똥통들을 소제하는 시간이었다. 아침밥이 끝난 뒤 조금 있으려면 저쪽 1사 쪽에서 덜커덕 덜커덕 똥통달구지 소리가 들려오고 이 소리가 들려올 때마다 감방 안의 우리들은 조심조심 뒤 들창문에 붙어서서 끌고 오는 꼴들을 내다보게 되는데, 앞에서 끄는 것은 이주신(李柱臣) 검사요, 뒤에서 밀고 오는 것은 K·P·K 악극단의 김해송(金海松)군인지라 날마다 보아도 날마다 기다려지고 그리워지는 이 시간이었다. 이 검사는 자기의 반동죄(反動罪)를 어떻게 판단하고 있는지 김해송군은 콧노래로 유행가나 불러보고 있는지…. 아아! 지금엔 가고 없구나, 이 검사도 김해송군도 그리고 모두가 모두….



출소(出所)와 총성(銃聲)

그리고 또 한 가지 우리들의 고독을 위안해준다느니보다 도리어 오장육부를 뒤집어주는 일과는 저녁 때마다 3사 중앙에서 들려오는 「레코-드」 소리였다. 그 「레코-드」도 단 한 장밖엔 없는 것인지 날마다 날마다 꼭 같은 노래인데 이 노래란 것이 그것을 듣기만 하면 명동거리와 종로 뒷골목이 눈앞에 선하게 나타나게 되는 현인군이 부른 「신라의 달밤」과 그 뒤판이었다. 명동거리나 종로 뒷골목뿐이라면 그래도 견뎌날 수 있었겠지마는 그보다도 더 내 집이 내 가정이 어머님이 계시고 아내가 기다리고, 그리고 어린것들이 굶주리고 있을 서울 안의 내 집이 한없이 그리워지는 것이었다. 여기서 내 집까지엔 단숨에 뛰어갈 수 있는 바로 지척이지마는 그 지척이 천 리였다. 이제 다시 볼 수 없을 내 집, 내 집이 우리들의 오장육부를 뒤집어놓는 것이었다. 그리고도 붉은 간수는 말하기를 「인민공화국 감옥에서는 이처럼 아름다운 음악까지 들려주어 감방 동무들을 위안해주는 것이다」라고. 이 얼마나 참혹한 위안이랴!

마지막으로 또 한 가지 감방의 고적을 깨뜨려주는 무서운 현상은 생각만 해도 소름이 쭉쭉 끼치는 이 현상은 흔히 밤늦게 또는 이른 새벽에 일어나는 것이었는데 그들이 말하는 소위 「출소(出所)」라는 호출이었다. 대개 세 사람 혹은 네 사람쯤 불러내어 어디로인지 데리고 가 버리는데 한 번 불려나간 사람으로서 다시 돌아온 사람은 하나도 없었던 것이다. 정녕코 출소인 것만은 틀림없는 것이었으나 그 출소가 결코 집으로 돌려보내는 석방의 출소가 아니라는 것은 나중에야 누구나 짐작할 수 있있던 것이다. 왜냐 하면 출소된 사람 가운데에는 나의 아는 사람도 몇 사람도 있어, 보도 연맹(保導聯盟)의 지도자이었던 작가(作家) 박영희(朴英熙)씨라든지, 일제 때의 큰 부호였으며 도지사를 지낸 정모라든지, 기타 사상 검사 고급 경찰관들의 반동죄(붉은 악귀들이 말하는)가 그리 쉽사리 석방될 리 없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그들이 불려나간 뒤 어디서인지 쾅쾅 총소리가 들려오면 (흔히 들려오는 것이었다.) 우리들 모두는 비록 입 밖으로 표현하지는 않았었지마는 출소와 총소리 이 두 개 현상에 정녕코 무슨 인과관계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었다.



공통(共通)된 염원(念願)

그동안 몇 번이나 꿈속에 꿈속만에 집으로 돌아가서 어린것들을 껴안아보기도 하고, 어머니에게 하소연도 해보고, 아내와 더불어 웃어도 보고 울어도 보고 이제야 자유로운 몸이 되었다는 기쁨에서 이 거리 저 거리를 마음껏 쏘다니다가, 문득 문틈으로 새어드는 새벽 찬바람에 홀연히 눈을 뜨고 보면 바로 순간 전까지도 자유의 세계를 보고 있었던 나의 두 눈동자에는 어제와 다름없이 두터운 감방문이 말없이 닫혀 있을 뿐이오, 어디서인지 맹꽁 맹꽁 맹꽁이 소리만 처량하게 들려오는 것이었다. 차라리 그 꿈이 영원한 꿈이었던들…. 이래서 다시금 꿈이나마 다시 꾸어보려고 이리 뒤척 저리 뒤척 잠 이루지 못한 이른 아침에 「기상(起床)」 붉은 간수의 무자비한 소리가 또 하루의 지옥문을 열고 마는 것이었다. 「10년도 좋고 20년도 좋고 그까짓 무기징역이라도 좋으니 재판을 해주었으면」 이것은 매일처럼 되풀이하는 젊은 손군의 안타까운 하소연이었지마는 이는 또한 우리들 모두의 공통된 염원의 하나이었던 것이다.



새로운 운명(運命)

8월 초하루. 감방 안 비름박에 손톱으로 조그만 달력(月曆)을 그려놓고 8월달 말에 한 일자를 써놓고 보니 내가 이 감방 안에 유폐된 지도 벌써 반 달이 지났으나 그 반 달이 반 년이나 아니 5년 10년도 더 된 것 같은 지루하고도 까닭 모를 세월이었고, 그동안 보고 들은 모든 현상이 모두가 인간의 주검이라는 가장 캄캄한 운명과 연결되어 있는 것뿐이었다. 8월 초하루. 이달에야 무슨 길보가 있으려니 하는 아득하고도 가느다란 희망으로 맞이한 이달 1일. 아닌 게 아니라 일찌감치 저녁밥을(언제나 저녁밥은 오후 네 시경 아직도 여름해가 하늘 복판에 달려 있는 때다.) 먹인 뒤 1사, 그리고 2사 3사 4사 등의 순서로 차례차례 많은 사람들을 불러나가는데 이것이 도대체 웬일일까? 그동안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던 상상 밖의(아니 기다리기는 하였지만) 나간 사람들은 감방 안에서 똑똑히는 알 수 없으나 귀와 육감으로 짐작하건데 필시 중앙(中央) 복도에 집합된 모양이었고 얼마 후에 인원을 점검하는 번호 소리를 정성드려 헤어보니 무려 3백여 명이라는 다수의 불행아들이 아마도 새로운 운명을 맞이하게 되는 모양이었다.



간수(看守)의 연설(演說)

이 새로운 운명이란 것이 원컨대 각자 자기 집으로 돌려보내는 기쁨의 석방이기를 누구나 기대하면서 그렇다면 이번 차례에는 나 자신이 빠지기는 하였으나 머지 않아 나에게도 저들과 같은 새로운 운명이 닥쳐올 것이라고 모두가 생각하고 바라고 있는 참에 우리들의 바람을 영락없이 입증해 주는 듯 붉은 간수의 우렁찬 연설 목소리가 모든 신경을 귀에만 집중하고 있는 우리들 모두의 귀에 「여러 동무들! 그동안 얼마나 고생하였소, 지금 이 자리에 모인 여러 동무는 그동안 우리의 교화를 충실히 받아 이만하면 인민공화국의 일꾼들이 될 수 있겠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날로써 여러분을 석방하는 것이니 여러분은 각각 집에 돌아가서도 이 안에서의 교화를 더욱 더 명심하고 씩씩한 일꾼이 되어주기를 원하오!」라는 뜻의, 그야말로 어깨춤이 저절로 추어지는 천사의 복음이 들려오는 것이었다. 이 연설이 끝나자 중앙의 집합자들, 즉 이날에 석방되는 행운아들은 넘치는 기쁨을 참지 못하여 「와! 와!」 환호 소리와 힘찬 박수 소리로 감옥 일대를 뒤집어놓는 듯…. 그도 그럴 수밖에 언제 다시 바깥 구경을 하게 될지 모르던 무기 죄수들이 이처럼 뜻밖에도 이처럼 짧은 교화만으로 자유의 석방이 되다니! 겨우 그들의 환호와 박수 소리가 그친 다음 아까와 같은 붉은 간수의 목소리로 「여러 동무들 소변을 하고 싶은 사람은 각사 맨 끝에 놓여 있는 똥통에 소변을 보고 오시오」라고 외치는 것이었다. 이래서 많은 행운아들이 우리 3사의 맨 끝 똥통으로 가게 되어 자연 우리들의 감방 앞을 지나가고 지나오게 된 것이었다. 석방되는 사람이나 감방 안의 우리들이나 이 절호의 기회를 놓칠 리 없이 모두 밥통 구멍으로 눈과 손들을 내어밀면서 「어떻게 된 거요? 정말로 석방이오?」라고 묻는가 하면 「그럼 정말 석방이지! 먼저 나가니 여러 동무들도 몸 편히 있다가 곧들 나오시오!」라고 대답들을 하는 것이었는데 불과 한 달도 되지 못한 그동안의 교화가 이다지도 효과적이었는지 또는 석방의 기쁨에 붉은 간수들을 본받은 세유인지 이들도 또한 「여러 동무」라는 「동무」의 호칭을 쓰는 것이었다.



생명(生命)을 버리는 일

이러한 출소 석방은 그 다음 초 3일에도 있었고, 또 초 4일에도 계속되었는데 그때마다 약 3백 명씩의 인원이었다. 이처럼 빨리 석방된 그들이 얼마나 부러웠는지 저녁밥들을 먹고 나면 누구나 출소 호령을 기다리게 되었고, 그 호령 있을 때마다 이번에야 자기 이름도 불릴 것이라는 거룩한 희망들을 희망하게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우리 24호실에서는 드디어 한 사람도 불려 나가지 않아 기다리다 못해 지치고 지친 손군은 「빌어먹을 왜 내 이름만 부르지 않는담!」이라고 원망 원망하는 것이었다. 그렇지만은 내가 탈주한 뒤에야 알고 보니 그 사람들은 한 사람도 집에 돌아온 사람은 없었고 다만 서대문형무소에서 개성 등지의 다른 형무소로 이동된 것뿐이었다. 그러면서도 붉은 사기한들은 이것을 마치 자유 석방인 것처럼 우리들 모두를 감쪽같이 기만한 것이었으니 그 이유는 우리들의 폭동을 두려워한 것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우리들을 안심시키고 머지 않아 석방될 수 있다는 가능의 희망을 줌으로써 감방 안의 우리들에게 양과 같은 순종을 기대한 것뿐이다. 희망 없는 사람, 절망에 빠진 사람일수록 앞뒤 모를 수 있다는 인간의 심리를 그들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당시에는 아무도 이러한 속임수를 알지 못하고 오늘이야 내일이야 나의 이름도 불릴 것이라는 희망을 끝끝내 버릴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8월 초 4일 이후로는 한 번도 그와 같은 대량 출소는 없었으나마 그래도 우리들은 어느 때이고 한 번은 불려 나갈 것이라는 가느다란 희망이나마 버리지 못하는 것이었다. 만약에 이것마저 버리게 된다면 곧 생명, 그것을 버리는 것과 꼭 같은 일이었기 때문이다.



편집국장(編輯局長)

8월 17일 새벽이었다. 잠결에 덜커덕 우리 방문이 열리더니 낯선 목소리로 「배상하!」 그리고는 아직 채 정신도 차리지 못한 나에게 「빨리 나와.」 하고 외치는 것이었다. 계급장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으나 붉은 간수의 정복을 입었고 팽팽히 둥근 모자, 거무퉤퉤한 얼굴, 그리고 어깨에는 「카빙」 총을 메고 있는 것이다. 그의 뒤를 따라간 곳은 중앙 옆 어느 컴컴한 지하실이었고 커다란 방 안엔 허름한 테이블이 몇 개, 송판대기 걸상이 여기저기 놓여 있었다. 그는 의자에 앉으면서 첫 마디 하는 말이 「답세 주어야지!」라는 것이었다. 답세 준다는 말은 이북 사투리로 경을 쳐준다는 뜻이다. 우두커니 서 있는 나를 아래위로 슬쩍 훑어보고는 「너 악질이야!」 그리고는 주머니에서 꾸게꾸게 조그마한 종이 조각을 꺼내들고 「너 일제 때 뭘 했어!」 이 사람은 정녕코 이 감옥 안의 간수일 뿐 재판소의 재판관은 아닐 것인데 이미 정치보위부에서 조사한 것을 이 자는 왜 또 다시 되풀이하려는가? 도대체 북한 괴뢰들은 간수로서도 사람을 재판할 사법권·재판권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나는 멍하니 선 채로 미처 대답할 사이도 없이 「너 일제 때 총독상을 타 먹었지?」라고 묻는 것이었다. 사실이었다. 「네」, 「일본 칼을 타 먹었지?」이 또한 사실이다. 「네」, 「차고 다녔지?」 아마 그는 일제시의 칼 찬 순사를 생각한 모양이다.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아니오.」 「그럼 어떡했어?」, 「군정 때 바쳤습니다.」, 「악질이야. 총독 놈에게 칼을 타 먹었으니 악질 친일 분자란 말이야! 해방 후는 뭘 했어?」 또 나는 멍하니 서 있을 뿐이다. 「너 「대한일보」 편집국장을 지내 먹었지?」 사실이다.(다음 호에)



나는 이렇게 탈출(脫出)했다(中)

- 공포! 절망! 비계! 신책의 연속선 -


죽음의 공포

그런데 이자는 먹는 것밖에는 할 말을 모르는지 말끝마다 먹는 타령이다. 「무슨 글을 써 먹었는가 말이야?」 「이것저것 여러 가지요.」 「거짓말! 너 우리 인민공화국에 반대하는 글만 썼었지?」 이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것을 그대로 시인했다가는 나의 죽음을 재촉할 것 같아서 「뭘요. 반드시 그렇지도 않았지요.」 「거짓말! 증거가 있단 말이야. 정말 악질인데.」 그리고는 어깨에 메고 있던 가방을 벗어내려 딸카닥 총알을 재지 않는가! 죽음! 총살! 나의 40평생이 이제 이 지하실 속에서 없어지고 마는구나 라는 생각이 결정적으로 떠오르자 재판 없는 무기 징역, 언제 또다시 살아나갈 수 있을 때 기약 없는 징역살이지마는 그래도 이 당장에 죽음을 직면하고 보니 무슨 수단으로라도 더 좀 살았으면, 죽지만 않았으면이라는 케케묵은 생각만이 나의 온 몸을 덜덜 떨게 하는 것이었다. 살구 싶다! 그저 살구만 싶다. 그러면 무슨 수단으로 무슨 방법으로? 그런데 이 순간 이상하게도 나는 「톨스토이」의 소설 「안나카레리나」가 생각되고 기차 바퀴에 자살하는 그 직전의 순간에서 그가 회고 연상한 그 모든 과거가 그대로 연상되는 것 같고, 그 가운데서도 두 어린것의 얼굴이 모든 연상을 휩쓸어 덮으면서 나의 심장에 「클로즈업」 하는 것이었다. 인간의 최후, 나의 죽음, 이것이 국난에 순(殉)하게 된 깨끗한 죽음인지 또는 모래알처럼 흔해빠진 전란의 희생으로 나타나는 죽음인지 그러한 죽음의 가치를 판단해보기 전에 그냥 나의 죽음이라는 이 직면된 운명 그것만이 한없이 무서울 뿐이었다.



생명의 애착심

(어떻게 해서라도 살자! 살아보자! 간수의 입에서 총살의 선언이 터져나오기 전에 무슨 방법으로라도 최후의 살길을 찾아봐야겠다. 그러자면 설사 죽을 때 죽더라도 정신을 차리자! 침착해지자) 붉은 간수는 아직 삼십 미만의 청년이다. 청년! 젊은이! 젊은 사람에게는 젊은 사람의 마음, 뜻, 감정이 있을 것이다. 만약에 이자가 당장에 나를 총살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면 또한 이자는 당장에 나를 살려줄 권한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젊은이의 마음, 그렇다! 마지막으로 이자의 젊은 마음을 이용해 보리라! 여기서 나는 이자의 모든 생각을 초월한 천만 뜻밖의 질문을 내던져보기로 하였다. 그러므로 해서 우선 이자의 나에 대한 관심을 좀 달리해놓고 나에게 가질 일종의 호기심을 일으키도록 해보자!
「그런데 간수님! 간수님께서는 아직 결혼허시지 않았지요?」 무엇인가 막 외치려던 이 젊은 간수는 나의 이 질문에 과연 뜻밖의 충동을 받은 모양인지 나의 두 눈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이 동무, 이 사람, 갑자기 미쳐먹었나? 왜 그따위 말은 묻고 있어?」 이제 곧 죽을 놈이 남의 결혼 여부를 묻고 있다는 것은 확실히 미쳐먹은 노릇이겠다. 「개수작 말어!」라고 고함치는 대신 이자는 넌지시 나를 미친 사람으로 미루면서도 나의 질문에 적지 않은 관심을 일으킨 양싶다. 옳지! 됐다! 젊은 사람의 마음! 나는 너의 이 젊은 마음을 이용해먹어야 하겠다! 「아니예요. 그저 문득 이 사람의 옛날 청춘 시절이 생각나는군요. 젊은이들, 더구나 간수님 같은 씩씩한 젊은이를 마주보게 되니 옛날 생각이 제절로 납니다. 그려!」라고 하면서 나는 모든 신경을 이자의 동정에 집중하고 나의 최면술이 어떤 효과를 나타내는가를 살피는 것이었다. 이러한 나의 계획을 알 배 없이 그도 문득 자기의 청춘이라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생각한 모양인지, 또는 이러한 청춘이 청춘의 맛을 맛보지 못하고 살벌한 내일 모를 전쟁터에 나와 있다는 현실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 모양인지 「청춘이 다 뭐야? 그따위 꿈 같은 소리는 작작해두어. 지금 이때가 어느 때라고 청춘이니 옛날을 생각하느니.」라고 하면서도 그의 두 눈은 이 지하 속 아닌 다른 무엇, 혹은 그의 고향, 혹은 그의 애인, 하여간 이곳에 있지 않는 그 무엇을 그려보고 있는 것 같다. 그는 나의 살기 위한 최면술에 점점 걸려들고 있는 것이다.

청춘을 거부당한 자

「그야 그러헙지요, 간수님. 그러나 청춘이란 것은 한 번 가면 다시 오지 못하는, 말하자면 인생의 꽃, 한평생에서 그중 좋은 시절, 즐거운 시절이 아니겠습니까? 거기에는 시가 있고 노래가 있고 그리고 더구나 사랑, 아름다운 사랑이 있고.」 「그런 것도 꿈이야. 자본 사회의 케케묵은 꿈이란 말야. 우리 인민공화국에선 그런 것보담 사상, 주의, 우리들의 주의를 관철·완성하는 것이 제일 큰 우리들의 임무란 말이야!」 「물론 그러하시겠지요. 그렇지마는 자기와 뜻이 같고 주의가 같은 씩씩한 여성과 청춘의 사랑을 즐기면서도 넉넉히 사상의 일꾼이 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이런 여성과 손을 마주잡고 국사에 헌신한다면 그야말로 금상첨화(錦上添花)이겠지요.」 「금상 뭐이?」 이자는 이제야 틀림없이 나의 한마디 한마디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이다. 젊은 사람으로서 청춘의 사랑을 거부할 사람이 누구이겠느냐? 「네. 금상첨화. 비단 위에다 꽃을 놓는다는 말씀이죠.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청춘에 속는 붉은 간수

「이렇게 간수님과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깐 내가 감옥 안에 갇혀 있다는 이 처량한 현실도 어쩐지 잊어버려지는 것 같군요. 사실 이 안에서 여러 가지 교화를 받고 장차 인민공화국의 역군이 될 수 있다면 그야 얼마 동안의 괴로움쯤은 얼마든지 견딜 수 있습니다마는 그래도 한 가지 마음에 거리끼는 것은 내게도 아들은 아니지만 간수님과 같은 젊은 청춘의 자식을 가지고 있는데 이걸 적당한 곳에 시집을 보내주지 못하고 이처럼 갇혀 있다는 것만이….」 「딸이요? 몇 살 났소?」 그의 질문은 단도직입적이다. 무릇 먹는 것이라든지 여성 관계 등의 인간 본능에 관해서는 어떠한 공산주의자들도 단도직입커녕 당장에 그 목적을 채우고 싶어 눈깔이 뒤집혀지는 것이다. 우리들의 대화는 그야말로 점입가경이요, 이자의 정신은 완전히 나의 포로가 되고 만 것 같다. 「네. 올해 수물한 살인데요. XX대학에 재학 중이랍니다. 그런데 이것이 또 묘허게도 한 집에 사는 제 아비와는 생각이 왼통 달라서 철저한 공산주의자랍니다.」 이 한 마디 거짓말이 나의 계획의 초점이었고 나를 살리기 위한 모든 최면술의 핵심이었던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이자는 저으기 인간적인 생각, 청춘의 본능적인 감정을 이기지 못했던 모양인지 「XX대학? 그건 어느메쯤 있소?」 필시 한 번 찾아갈 눈치이다. 이 말을 묻고 난 뒤 이 젊은 공산주의자는 「동무, 거기 그 의자에 앉으시오!」라는 것이다. 여태껏 나는 서 있었던 것이다. 「네. XX대학은 여기서 이렇게 가서 저렇게 가서….」 손가락으로 책상 위 먼지 속에 자세히 지도를 그려 주었다. 「당신 따님은 훌륭한 사람인데 왜 당신은 이렇게 됐오?」 「너」가 「당신」으로 변하고 조금 전의 「딸」이 「따님」으로 변한다. 「….」 「그리고 당신 집은 어드메요?」 또 한번 먼지 위에 손가락 그림을 그려보였다. 「간수님. 틈 나시는 대로 제 딸년을 한 번 찾아주십시오.」라고 부탁하였다. 이 부탁은 최면술만에 그치는 것이 아니었고 충심으로의 부탁이었다. 만약 이 자가 정말로 내 딸을 찾아간다면 자연 내가 이곳 서대문형무소에 갇혀 있다는 것을 가족들이 알게 될 것이 아닌가? 바로 서울 장안 엎드리면 코 닿을 곳에 내 집 내 가족이 있으면서도 내가, 아니 우리들 모두가 이곳에 갇혀 있다는 사실을 어느 가족인들 알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당신, 학교는 어딜 나왔오?」 「옛날 서울대학입니다. 그땐 경성제국대학이라 했지요.」 「응. 그런데 당신의 죄를 모두 정치보위부에서 고백했오?」 「그러먼요! 전부 다 고백한 것입니다.」 「응…. 당신, 그런데 유XX라는 목사를 알우?」 알구 말고. 유 목사는 일제 때부터 잘 아는 사람이었고 이번에 정치보위부에서도 한 방에 있었으며 「트럭」으로 이곳에 끌려올 때에도 한 「트럭」, 그리고 그도 필시 이 3사 어느 감방에 갇혀 있을 것이다. 「당신, 그 목사와 혐의진 일 있소?」 오라! 이제야 모든 진상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이 유 목사는 일제시 어떤 사업관계로 나와 다툰 뒤 지금까지 서로 상종이 없었던 터인데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나는 격으로 이자가 틀림없이 나를 모함·중상한 것이다. 붉은 간수들이 감방 안의 비밀을 알기 위해서 몇 사람씩 「스파이」를 쓰고 있을 것은 환한 일이기 때문이다. 「네. 유 목사와 조금 다툰 일이 있었습니다.」 「응! 잘 알았어. 그런데 당신 인재란 말이오. 우리 교화만 잘 받으면 훌륭한 일꾼이 될 수 있는 인재란 말이오. 우리 공화국에선 인재를 아낌으로 인재는 죽이지 않을 거야.」 이래서 나는 그의 총구멍에서 다시 살아나올 수 있었던 것이다. 최면술! 거짓말! 나의 딸을 공산주의자라고? 그러나 이 거짓말이 나를 살려준 거짓말이고 보니 나의 일생에 가장 가치 있고 가장 참된 거짓말이겠다.



미지의 운명

9월이 되면서부터 감옥 안에 있는 공습 「싸이렌」이 하루 종일, 그리고 밤새껏 해제되지 않는 때가 계속되는 것이었다. 사실 아군의 비행기는(그 모습만은 잘 볼 수 없었으나) 쉴새없이 우렁찬 폭음을 날려 때로는 몇 대씩의 「제트」기 편대가 나지막하게 곧 기총소사라도 할 듯이 이 감옥 지붕 위를 날아가는가 하면 어디서인지 쿵! 꽝! 그리고 안산(雁山 = 감옥 뒤에 있는 산) 저쪽으로부터 검은 연기가 무럭무럭 피어오르는 것이었다. 얼마 전부터 감방 안의 기술자들 - 구두직공, 인쇄직공, 목공 등을 불러내어 감옥 안 여러 공장 안에서 일들을 시키게 되었는데 재판 없는 징역살이에 너무나 지치고 잠깐이라도 바깥 공기를 쏘이고 싶은 여러 동지들은 서로 다투어 가면서 이 기술자 선택에 응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아침에 나간 그들이 저녁 때 돌아와서 간수가 아직 감방 문을 열기까지의 짧은 시간을 이용해서 그들이 들은 바깥 소식을 우리들 감방 안 동지들에게 전해주는데, 그들 소식에 의하면, 혹은 UN군이 원산(元山)에 상륙하였다는 둥, 혹은 인천에 상륙하여 서울로 쳐들어오는 도중이라는 둥, 하여간에 괴뢰군들은 부산까지 밀고가지 못하고 이제야 모조리 쫓겨가는 판이라는 둥의 소식이었는데, 이러한 소식은 물론 우리들의 어깨춤을 저절로 추게 하는 신나는 소식들이지마는, 그러면 그들이 서울에서 쫓겨나갈 때에 감옥 안의 우리들을 어떻게 처치할 것인가가 우리들의 공통된 의문이었고 걱정이었다.



탈주의 기회는?

아무리 에누리해서 낙관적으로 상상하고 싶어도 놈들이 「여러분, 그동안 고생들 하셨지요? 이젠 안녕히 집으로들 돌아가시오.」라고 우리들을 무사히 석방시킬 이치가 만무할 것이요, 도리어 그 반대로 우리에게 가장 불행한 운명이 닥쳐올 것으로밖엔 생각되지 않는 것이었다. 그리고 보면 서울의 탈환이라는 국가적 승리는 곧 우리들 개개인에 대해서는 가장 슬픈 최후를 의미하는 것이라는 안타까운 「딜레마」에 빠지지 않을 수 없는 것이었다. 이러한 「딜레마」는 감방 속 모든 사람들에게 공통된 고통이었고 그러기 때문에 닥쳐올 그날이 반갑기도 하고 또한 무섭기도 하는 것이었다. 나는 깊이 생각할 여지도 없이 서울의 탈환은 곧 우리들의 죽음이라는 추측을 확정적으로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다만 여기서 연구해보아야 할 문제는 첫째로 ‘그 최후가 어떠한 형식으로 나타나겠느냐?’의 문제인데 여기 대해서 스스로 해답하기는 모조리 학살하거나 또는 이북으로 납치하거나의 두 가지 중의 그 하나일 것이라는 것이오, 그렇다면 학살이건 납치건 하여간에 우리들이 마지막으로, 그리고 처음으로 이 두려운 감방문 밖엘 나갈 수 있을 것이라는 결론이다. 다음 둘째로는 이 한 번 밖에 없을 기회, 감방 밖으로 나갈 수 있는 단 한 번의 기회를 어떻게 해야만 가장 효과적으로 이용할 수 있느냐? 문제였다. 말하자면 탈주의 기회는 이 한 번만의 순간뿐일 것이니 ‘어떻게 해야만 성공적으로 탈주할 수 있을 것이냐?’의 문제인데 여기 대해서 나는 다음과 같이 생각하였고 다음과 같이 행동한 것이었다.



꿈 속의 천사

9월 20일 밤이 깊어서다. 이루지 못하던 잠이 겨우 들락말락 하였을 때 나는 이상한 꿈을 꾸었던 것이다. 사람이란 누구든 자기 자신의 힘으로는 도저히 감당하기 어려운 경우에는 반드시 자기 이외의 자기보다 더욱 큰 힘, 눈에 보이지 않는 형이상(刑而上)의 영적 존재(靈的存在)의 힘을 믿고 싶어지고 여기에 의지하고 싶어지는 것이다. 이 속에 갇혀 있는 칠십여 일 동안 나는 밤이든 낮이든 생각날 때마다 하느님에게 호소하는 것이 나의 마음에 대한 스스로의 단 하나밖에 없는 위안이었다. 나는 본래 기독교 신자가 아니다. 그러나 나의 호소, 나의 기도는 죽음밖엔 아무 길도 없을 이 막다른 순간에 더욱더 열렬한 것이었고 더욱더 쉴 새 없이 계속되는 것이었다.
「하느님! 저에게 기적(奇蹟)을 내려줍소서, 저에겐 아무런 힘도 없고 또한 이 세상에선 하나도 믿을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전지전능하신 하느님께선 이 조그만 생명을 구하시려면 언제나 기적을 내려주실 수 있을 것이오니, 한 번만 저에게 기적을 내리시와 저의 불쌍한 생명을 구해주시옵소서.」
그러던 끝의 9월 12일 밤이었다. 바로 감옥 뒤 안산(雁山)에 폭탄이 떨어져서 그곳 전체가 불바다로 변하였고 그 불길이 점점 이 감옥 안으로 달려들어 순간 후이면 갇혀 있는 모든 사람이 불에 타 죽을 수밖에 없게 된 것이었다. 막 그 뜨거운 불길이 나의 감방 속으로 들어 밀려 할 때 하늘 나지막하게 흰 옷을 훨훨 날리면서 성스러운(그렇게 생각되는 것이었다.) 천사(天使)가 날아가면서 똑똑한 음성으로 외치기를 「너는 살 수 있다. 그러나 네가 살아나는 대신 너의 가장 사랑하는 어린 아들이 죽게 될 것이다.」라고 하는 것이었다. 깨고 보니 꿈이다. 나는 엎드려 다음과 같이 기도하였다.
「하느님! 저를 살려주시겠다 하시오니 감사하옵나이다. 저의 자식을 데려가시는 한이 있더라도 저를 살려주시옵소서! 제가 살아야만 저의 가족 전체가 살 수 있는 것입니다.」라는 잔인한 기도를 올린 것이다. 누구인들 사랑하는 자식이 죽는다는 것이 슬프지 않을 것이랴? 그러나 나의 어린것이 죽더라도 내가 살겠다는 것은 나 자신의 생명이 아까워서가 아니었고 내가 살아나야만 많은 가족 전부가 살 수 있으리라는 대승적인 이해타산에서였다. 어린것이여! 이 아비의 잔인무도한 생각을 원망하지 말아 다오! 그 이튿날 13일 이른 아침, 붉은 간수의 명령에 따라 우리들은 모두 지금까지 각각 쓰던 그릇 두 개씩의 「알루미늄」 사발들을 내어주었다. 그릇을 소독해야 한다는 붉은 간수의 호의적인 명령에 의해서다. 그러나 그 뒤 바꾸어 들어온 두 개씩의 다른 그릇은 대부분이 망쳐지고 부서지고 틈이 군데군데 난, 더럽고 낡은 것이었으니 그들은 마지막 판에 쓸 만한 그릇들을 회수해서 아마 이북으로 가지고 갈 심산인 듯싶었다. 그 중에서도 나의 것으로 바꾸어진 것은 물을 담아도 이틈저틈으로 흘러 새고 말 것이지 깡통이라도 가장 전형적인 두 개의 깡통이어서 손가락에 조금 힘만 더 주어도 금시에 부서질 것 같은 처량한 것이었다. 하루 세 번씩 그릇 한 개로 물을 받게 되는 것인데 이젠 물마저 제대로 얻어먹지 못할 형편이 된 것이다. 그러나! 이 처량한 두 개 「알루미늄」이 나를 살리게 된 맨 처음의 하느님의 기적이었던 것이다.



새로운 공포

(이 낡아빠진 두 개 그릇을 받은 뒤 사흘째 되던 9월 16일 이른 아침, 갑작스레 우리 3사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게 소란해지더니 아래 위 층으로 정치보위부의 조사관(사복경관이라고나 할까?)들이 대단히 조급하고 초조한 태도와 음성으로 우리들 전부의 명부(名簿)를 다시 기록 제작하는 것이었는데, 지금까지도 여러 차례 우리들의 명부를 조사하기는 하였으니 그건 모두 간수들이 한 것이었고 정치보위부에서 직접 이렇게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인 것이다. 더구나 이처럼 이른 아침에 불이야 불이야 급히 서두르는 것은 필시 무슨 곡절이 있는 것이 아닐까? 나는 오래 생각할 여지도 없이 이 곡절은 틀림없이 우리들의 최후를 의미하는 것이라는 결론을 내리지 않을 수 없었다. 정확한 명부를 정치보위부로서 직접 만들어야 할 이유는 첫째로, 정치보위부에 폭탄이 떨어져 과거에 만들어 두었던 우리들의 명부 서류가 없어진 것이겠고, 둘째로 그러기 때문에 다시 명부를 만들어 그 명부와 함께 우리들에 대한 최후적인 조치를 오늘 안으로 단행하게 된 것이라는 논리를 세워본 것이다. 그러면 오늘의 최후란 것은 두 개 중, 즉 우리들을 전부 학살하느냐 또는 이북으로 납치해 가느냐의 하나일 것인데 하여간 오늘로써 처음으로,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굳게 닫혀진 철문 바깥엘 나가 볼 수 있을 것이다. 왜냐 하면 그들이 설사 우리들을 모조리 학살한다 하더라도 이 감옥 안의 감방 안에 둔 채로는 죽이지 않을 것이겠고 반드시 산 속이나 강 가 같은 바깥에서 행동할 것이기 때문이다.



탈출하는 방법

이 명부 조사가 끝난 뒤 아침밥이 들어왔는데 8·15날에 흰 밥을 준 뒤 두 번째로 흰 밥, 더구나 두둑한 분량의 흰 밥이었다. 나이 어린 손군은 「아! 오늘은 내 생일날이로다!」라고 기뻐하였으나 나는 그 반대로 이 두둑한 흰 밥이 사형수의 최후를 의미하는 것으로밖엔 생각되지 않아 그 먹음직한 흰 밥을 절반도 못다 먹고 손군에게 양도하고 말았던 것이다. 그리고 나의 모든 신경, 모든 정신은 오늘 이날에 닥쳐온 이 한 번만의 마지막 기회를 어떻게 해야만 성공적으로 이용할 수 있을까의 방법을 연구하기에만 몰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직 이렇다 할 좋은 방법이 구상되기 전에 점심밥- 이도 역시 두둑한 흰 밥들이 들어오게 되어 손군의 기쁨이 더한층 커질수록 나의 심정은 더욱더 괴롭기만 하였고 초조함을 금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궁하면 통한다는 옛날 말씀대로 최후의 기력을 총동원한 나의 머리에서는 마침내 다음과 같은 가능성 있는 한 개의 탈출 방법이 구상된 것이다. 이 결론을 얻은 뒤 나는 곧 이것을 행동화해서 우리들을 학살하든 납치하든 좌우간에 그들은 우리를 문 밖으로 데리고 나갈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이겠고 데리고 나갈 때엔 반드시 우리들 전부를 포승으로 결박할 것도 또한 틀림없는 사실이니, 첫째로 나는 이 포승의 줄을 끊어 몸의 자유를 얻어야 하겠는데 그러면 칼은 물론이요, 유리 조각 하나 없는 이 감방 안의 몸인지라 도대체 무엇으로써 줄을 끊을 수 있을 것인가? 나는 문득 뒤 들창에 달린 두 쪽의 유리창을 바라보았고 이것을 깨뜨리면 날카로운 유리 파편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되기는 하였으나, 그러나 만약 이 행동이 미연에 발각된다면 (그리고 으레 발각될 것이 아닌가) 탈출은커녕 나 혼자 먼저 저세상으로 떠나가게 될 것이니 도저히 이것을 깨뜨려볼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러면 어떻게? 물에 빠진 자가 가느다란 지푸라기라도 부여잡듯이 나는 끝끝내 단념하지 않고 혹은 눈을 감고 연구도 해보고 혹은 눈을 뜨고 방안 구석구석을 샅샅이 찾아보기도 한 것이었다. 그러자 옳다! 됐구나! 나의 눈에는 나의 두 개, 다 찢어진 「알루미늄」 그릇이 번개처럼 번덕인 것이었고 그로서 많은 힘은 들 것이나마 오랫동안 줄을 스쳐대면 결국 한 개의 포승쯤이야 끊을 수 있을 것이라는 결론을 얻게 된 것이었다.



유리 조각으로!

이 효과적인 결론을 얻고 난 뒤로 나는 다음의 방법으로서 이번 탈출을 결행함에는 나 혼자로서는 도저히 불가능할 것이오, 반드시 뜻 맞는 동지 몇 사람, 그도 몸이 튼튼하고 날쌘 젊은이들과 협력해야 할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자 평소부터 나를 무척 의지하고 있는 손군이 나이 스물여섯 된 권투선수이니 누구보다도 손과 먼저 의논하기로 한 것이다. 그 결과 손군은 몰론 크게 찬성하면서 「그까짓 자식들 따발총을 빼앗아 골통들을 갈겨 주고 달아나지요!」라고 장담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손군! 우리 두 사람 이외에 또 몇 사람 더 있어야겠는데 이 3사 안에 군이 잘 아는 그런 친구가 없는가?」 「왜요? 많이 있지요. 똥통 소제할 때마다 몇 사람 친한 친구들을 보았답니다.」 「그럼 됐소! 있다가 그 중 몇 친구만 함께 손을 잡아서 거사하기로 허세!」
본시부터 아직 해가 중천에 떠 있는 이른 저녁 때에 저녁밥을 주던 것이 이날은 더욱 일러서 점심밥이 끝나자마자 뒤미처 곧 저녁밥이 들어왔는데 여전히 두둑한 흰밥이었다. 과연 성공이 될지 안 될지는 몇 시간 뒤에 알게 될 미지수의 운명이지만 하여간에 죽든 살든 오늘로써 현재까지의 지루한 감방 생활에서만은 떠날 수 있을 것이고 더군다나 내 딴으로서는 탈출의 희망을 달성할 수 있을 것 같은 최선의 방법도 생각해 놓았으니 이제야 마음이 다소 거뜬해져서 저녁 밥은 한 알 남기지 않고 달게 먹어주었다.
그리고 식사가 끝난 뒤 곧 행동을 개시하여 나의 밥그릇에서 성냥갑의 절반씩 만한 네게의 조각을 떼어서 두 개는 내 주머니(국방색 양복바지) 속에 넣고 남은 두 개를 손군에게 주면서 잘 보관해두라고 하였다. 이미 탈출 계획을 알고 있는 손군인데 이 조각의 용도를 알지 못한 모양으로 「이건 뭘 합니까?」라고 묻는 것이었다.
「잠자코 넣어두게.」


운명의 분기점

다음에 나는 어느 지점에서 탈출을 결행해야 할 것인지를 연구해보았다. 그러나 우리들을 어느 곳으로 데리고 갈는지를 알지 못하는 이상 이 문제만은 당한 그때에 임기응변(臨機應辯)의 조처를 취하기로 하고 우선 탈출 결사대로서 우리 두 사람 이외에 서너 사람만 더 참가시키기로 결정해두었는데, 우리와 한 감방 안에 있는 김씨와 이씨는 그들의 근본 생각이 어떠한지도 알 수 없고 또 젊은 사람도 아닌 관계로 이 행동에서 제외하기로 하였다. 물론 이 두 분을 의심하는 바는 아니지만, 이번의 결사 행동은 그야말로 죽느냐 사느냐의 막다른 길인 만큼 만약 사전에 탄로된다면 행동을 시작하기도 전에 여러 사람이 개죽음을 하고 말 것이므로 극비의 극비로서 일을 진행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요, 그러기에 많은 사람들을 가입시킬 수도 없는 일이었던 것이다.(다음 호에 끝)



나는 이렇게 탈출하였다.(完)

- 기지로 수갑을 끊고 물통을 둘러메고 그리고-

절망의 구렁으로!

해가 떨어지자마자 과연 나의 예상한 그대로 1사 2사에서부터 요란한 소리가 들려오면서 뒷 창문으로 넘어다보는 우리들 눈에는 2사 모든 감방 안 친구들이 차례차례 문 밖으로 끌려나가는 것이 희미하게 보이는 것이었고, 이어 곧 우리 3사에도 여러 발자국 소리가 들리더니 어느 작자의 「감방 안 여러 동무! 지금부터 감방문 전체를 열테니까 모두들 질서 있게 조용조용히 그리고 아무 물건도 가지지 말고 입은 채로 복도에 나와 정숙하게 앉으시오!」라는 외침이 들리어오는 것이다. 그렇다! 나의 무서운 예상은 틀림없이 들어맞았고 이제야 우리들의 최후가 닥쳐오고 만 것이다. 복도로 끌려나간 우리들 모두는 그들의 추상 같은 호령으로 두 사람씩 쌍쌍으로 짝을 짓고 한 줄에 약 백 명씩의 소대로 편성되어 복도 양쪽으로 줄줄이 늘어앉게 됐는데 나는 이미 아침부터 이러한 사태가 닥쳐올 것을 짐작하고 있었던 만큼 그다지 놀라지 않았으나 이것을 예상하지 못하였던 대부분의 친구들은 무슨 영문인지를 알지 못하고 다만 최대의 불상사가 갑자기 닥쳐온 것만은 누구나 알아차려 여기서도 저기서도 「이거 웬일이오? 대관절 어떻게 되는 거요? 어디로 가는 거요?」라고들 수군대는 것이었다. 좌우 앞뒤를 휘 둘러보니 바로 옆줄에는 백발이 성성한 황옥(黃玉) 선생이 앉았고 또 저편에는 성대(成大) 동창이었던 이능석(李能奭), 이의식(李義植)군이 있는가 하면 저쪽에는 나를 모함·밀고 하였던 유목사도 머리를 숙이고 있는 것이다. 나는 곧 손군에게 지시하여 믿을 만한 젊은이 네 사람만 우리 쪽으로 불러오게 하여 오른편의 나와 왼편의 차구식군(종로청년단의 간부)이 한 쌍이 되고, 우리 앞으론 바른편에 손군, 왼편에 학련(學聯) 꼬마(그의 이름을 알 수 없으나 손군의 친구 학생)가 한 쌍, 그리고 그 앞엔 역시 손군의 친구인 두 사람의 씩씩해보이는 국군(성명을 알 수 없다)이 한 쌍, 이렇게 여섯 사람 세 쌍이 가지런히 앉게 되고 나의 뒤와 국군의 앞으로 여러 쌍쌍이 정비된 것이다. 이와 같이 한 줄에 정비된 것이다.

이와 같이 한 줄에 약 백 명씩의 여러 소대가 편성되자 붉은 간수 몇 사람이 우리들을 결박하기 시작하였는데, 그들 손에 들고 있는 결박의 기구, 즉 속칭 맹꽁이자물쇠라는 금속의 고랑쇠를 보자 나는 그만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캄캄한 절망감을 지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그것은 나의 예상을 너무나 무섭게 배반한 것이었고 나의 탈출 희망을 너무나 여지없이 깨뜨려 버린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의 예상으론 결박의 기구가 반드시 밧줄과 같은 포승으로만 생각하였을 뿐 이 맹꽁이자물쇠라는 금속 기구는 상상도 하지 않았던 것이요, 따라서 이것을 열거나 깨뜨릴 수 있을 아무런 방법도 나는 미리 생각해 두지 못하였던 것이다. 주머니 속에 들은 그릇조각으로 포승인들 가까스로 끊을 듯 말 듯한 것을 어떻게 쇠로 만든 이 고랑쇠를 깨뜨릴 수 있을 것이랴! 그들은 이것으로 나의 왼팔과 차군의 바른팔을 한데 뭉쳐 단단히 채웠고, 다른 모르는 친구들도 다 이와 같이 고랑쇠 신세를 지게 한 다음 첫머리서부터 맨 끝까지 굵직한 밧줄을 고랑쇠 구멍으로 꿰어 넣어 마치 청어두루미처럼 우리들을 2열 종대로 결박하고 만 것이다. 나는 눈을 감고 하늘을 탄식하였다. 하느님을 원망하였다. 그리곤 나 자신의 그다지도 세밀하게 연구한 하루 종일의 지혜가 이다지도 어리석고 못난 것임을 애탄할 따름이었다. 자유를 얻을 수 있을 어떠한 방법도 생각할 여지조차 없었다. 「모두 일어서! 따라 나와 !」 추상 같은 호령이었다.



붉은 간수

벌써 어두컴컴해진 바깥으로 끌려나가니 오래간만에 쏘여보는 대자연의 시원한 공기가 새삼스러이 울고 있을 불쌍한 가족들을 생각케 하는 것이었고 눈물 어려 앞을 잘 볼 수 없는 우리들에게 「빨리 걸어! 개자식들아!」 그리고 억센 구두 발로 이 사람 저 사람을 함부로 걷어차는 붉은 간수들! 더운 여름에 붙들려 들어간 우리들인 만큼 입은 옷이 대개 「샤쓰」 하나 엷은 바지 하나의 여름 차림인 데다가 수감될 때 압수당한 물건, 시계, 「라이터」, 돈, 심지어는 신발마저 돌려주지 않아 모두가 맨발인지라 맨발 바닥에 잔돌가시 같은 것이 채이고 찔려 감방 속에서 구치감(拘置監) 옆 광장(廣場)까지 끌려가는 짤막한 거리도 걸어가기에 여간 힘든 것이 아니었다. 거기다가 석 달 가까이 먹지 못한 영양 부족의 쇠약한 몸으로 도대체 어디까지 끌려가서 작정된 최후를 맞이하게 될 것이지, 나뿐이 아니라 대부분의 집들이 바루 엎드리면 코 닿을 이 서울 안 멀지 않은 곳에 있건만은 지척이 천 리로다 불행한 우리들이 어디 있다는 거처마저 불쌍한 가족들은 알지 못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꿈 속에도 잊지 못한 어린 자식, 늙으신 어머니, 병든 아내를 이곳에 두고. 아! 우리들은 이제부터 어디로 가는 것일까? 벌써 밤은 어두울 대로 어두워졌다.

광장에 끌려나온 우리들은 어둠 속에서 둘러보아도 상당히 많은- 이 넓은 광장이 꽉꽉 차도록 많은 수효인 것을 알 수 있었다. 어두워서 옆줄에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도 알 수 없는 것이지마는 이 많은 불행아들이 다 똑같은 운명, 그것도 두 번 없을 최후의 같은 운명을 맞이하게 되는 것이다. 아마 서대문형무소의 수감자 전부를 이감으로 처치하기 위해서 이 광장에 이와 같이 모아놓고 이제로부터 마지막 길을 떠나게 할 예정인 모양이다.



생지옥의 대열

여기에서 전부의 인원 조사로 저쪽 첫머리부터 각 소대별의 번호를 부르게 되었는데 그 번호 숫자를 대강 암산해보니 약 6천3백여 명인 것 같았다. 모두 두 줄씩으로 나란히 앉은 채 여러 번 번호들을 부르는 동안 전후좌우로 붉은 저승처사들이 따발총 소총을 메고는 우리들을 경계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원체 우리 비행기의 폭격이 심하고 무서웠던 탓인지 불이라고는 성냥불 하나도 없는 캄캄한 어둠 속, 더구나 달도 없고 별도 구름에 덮인 지옥 그대로의 어둠 속에서 진짜 지옥으로 가는 모든 절차가 차례차례 진행되어 가는 것이다. 시간이 지나갈수록 나의 마음은 더욱 더 초조해질 뿐이다. 고랑쇠라는 철(鐵)의 열쇠를 미리 생각해두지 못하였기 때문에 그다지도 오랫동안 동경(憧憬)해오던 탈주의 희망이 전연 깨어지고 만 것이다. 캄캄한 하늘, 구름 낀 하늘만 쳐다보고 앉았는 내 눈엔 다시금 가족들, 병든 아내, 늙으신 어머니, 딸, 그리고 두 어린것들의 모습이 「클로즈업」 되고 어디서인지 전차 소리만 끽끽 소리쳐 들려오는 것이었다.

전차 소리 쇠바퀴가 쇠로 만든 「레일」 위를 굴러가는 끽끽 소리 쇠와 또 쇠. 독(毒)은 독으로 제(制)해야 하고 쇠는 쇠로 뚫어야 하고. 그러자 문득 나에겐 옛날 어느 때 누구에게 들은 이야기- 고랑쇠도 조그만 못[針]만 있으면 열 수 있다는 말이 번개처럼 생각되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나는 자유로운 바른편 팔이 닿을 수 있는 범위내의 땅바닥을 모조리 조심조심 더듬어보았다. 못! 행여나 못 부스러기라도 떨어져 있을까 하고, 그러나 그런 것이 있을 리 없었다. 어떻게 하나 못! 이것 하나만 있으면 탈주의 희망이 달성될지도 모를 이 귀중한 못! 그러자 또 한 번 나의 흐리멍텅한 머릿속으로 갑자기 떠오르는 하나의 생각은 언젠가 감방 안에서 손군이 말하기를 그는 고학하기 위해서 한동안 어느 철공장에서 일한 일이 있었다는 이 한 마디 말이 생각되어 나는 내 앞에 앉아 있는 손군 꽁무니를 가만히 찌르고는 전후좌우로 붉은 간수의 경계를 경계하면서 귓속말로 「손군! 아까 내가 준 그릇 조각이 있지! 그걸 가지고 못을 만들어보아! 빨리!」



구원의 열쇠?

손군은 곧 내 말의 깊은 뜻을 알아차린 듯 고개를 꺼덕꺼덕 하고는 이빨로 그릇 파편을 물어뜯기 시작하였다. 한참 동안 시간이 걸린 뒤 손군은 기쁨에 넘치는 목소리로 나의 귀에 입을 대고는 「됐습니다. 지금 막 고랑쇠를 열어보니깐 제대로 열려요!」라고 하면서 다시금 앞뒤를 둘레둘레 살펴본 다음 비스듬히 뒤돌아 앉으면서 나의 왼쪽 팔목과 차군의 바른쪽 팔목에 걸려 있는 고랑쇠를 더듬어 차군 쪽의 고랑쇠를 소리 없이 여는 것이었다. 「됐다! 그럼 주머니 속에 단단히 넣어두게! 그리고 열린 고랑쇠는 본래대로 채워두게!」라고 지시한 다음 나는 가만히 눈을 감고 하느님의 기적에 감사 기도를 올리었다. 그러자 얼마 되지 않아 간수 한 명이 손에 가위를 들고는 우리 줄 옆에 오더니 「이 줄은 너무 긴데. 어디서 자를까?」라고 하면서 하필 내 곁에서 우물쭈물 하고 있지 않는가. 만약 손군과 나와의 사이를 끊어 버린다면 탈주 계획은 또 무너지고 마는 것이다. 그러나 하느님의 기적은 여기서 또 나타난 것이었다. 그는 바로 내 뒤에서 줄을 끊었으니 내가 이 줄의 맨 마지막이 된 것이요, 따라서 못을 가진 손군과 떨어지지 않았을 뿐 아니라 고랑쇠 구멍으로 뀌어 놓은 밧줄은 이제야 내 마음대로 끊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조금 있더니 어떤 작자가 어두컴컴한 곳에 우뚝 일어서서 「여러분, 내 말을 잘 들으시오. 미국놈들의 비행기가 여러분의 생명을 위협하고 있는 까닭에 지금으로부터 여러분을 안전 지대로 이동하는 것이니 그 도중에서 만약 누구든 탈주를 한다거나 폭동을 일으킨다고 할 것 같으면 그 당장에서 총살할 것이오!」라고 한바탕 무서운 연설을 하는 것이었다. 총살! 좋다! 총살이 되더라도 가족들이 살고 있는 이 땅 이 서울 땅에서 죽었으면 좋겠다.




행동 개시의 첫 날

이윽고 우리들은 차례차례로 끌려나갔다. 나가기 전에 각 소대별(各小隊別)로 점호한 번호를 대강 계산해보니 약 6천여 명인 듯싶다. 오래간만에 쏘여보는 바깥공기다. 감옥 대문 밖에는 어둠 속에 수없이 많은 전차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필시 전차로 어디로인지 끌고 가는 모양이다. 우리들 여섯 명의 탈주 결사대는 전차 가운데 문 앞에 바싹 다가서 있었다. 탈주의 장소라든지 시간 등 모든 것을 내가 지휘하기로 결정하고 단독 행동은 절대로 하지 않기로 서로 약속하였다. 여섯 명의 생명이 나의 판단 하나에 달려 있는 것이다. 어디서? 어느 때 실천해야 할 것인가? 생각건대 우리들의 전차는 두 길 중의 하나, 즉 청량리로 가든지 그렇지 않으면 서울역으로인지? 만약 청량리로 간다면 경마장 앞에서 뛰어내려 경마장 곁 넓은 채소밭 속에 숨기로 하고 서울역이라면 역 안에 들어서서 기차를 태우려는 순간 기차바퀴 밑으로 빠져 달아나자! 이것이 미리 작정해둔 나의 투쟁 계획이었다.

전차는 어느 새 파고다공원 앞을 지났다. 그러면 청량리로 가는 것이 분명하다. 경마장! 우리들이 목숨 그것을 걸고 마지막 싸워볼 경마장 앞! 파고다공원을 지나면서 나는 손군에게 명령하여 고랑쇠를 열게 하였는데 나와 차군과의 고랑쇠는 손군의 위치상 할 수 없어 차군 쪽을 열게 되었으므로 나와 차군과 따로따로는 자유로이 떨어질 수는 있었으나 나의 왼쪽 팔목에는 두 개의 고랑쇠가 디롱디롱 달려 있게 된 것이다. 시간의 여유가 없는 만큼 두 사람의 고랑쇠를 모조리 다 열 수는 없었던 것이다. 그러자 경마장! 우뚝 솟은 지붕이 어둠 속에 희미하게 나타날 때 나는 손군에게 가운데 문을 열게 하고 손군을 첫머리로 차례차례 여섯 명이 최대 속도로 달리고 있는 전차에서 튀어내리었던 것이다. 여섯 번째 맨 끝으로 뛴 것이 나 자신이었고 뛸 때 너무 황급해서 자세를 갖추지 못하였기 때문에 몸이 공중에서 한 바퀴 완전한 「덤부링」을 한 다음 양쪽 어깨로 그 단단한 땅 위에 떨어진 것이다. 정신이 아찔하고 눈이 핑핑 돌아 보통 때 같으면 도저히 일어날 수 없었을 것이지마는 바로 이 순간이 죽느냐 사느냐의 마지막 순간인 만큼 최후의 용기를 내어 우뚝 일어서는 전차와는 정반대 방향으로 달려 경마장 옆 채소밭을 향해서 뛰어간 것이었다. 뛰면서도 누구인지 금시에 「이 놈! 게 섰거라!」 할 것 같아서 가슴이 콩만해지고 생명의 불길이 바로 머리끝에서 왔다갔다 하는 판이지마는 뛰는 도중 다행히도 아무도 만나지 않았었고 먼저 뛰어내린 결사대 동지들도 어디로 갔는지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가슴 죄는 발걸음

왼쪽 어느 골목으로 뛰어들어 채소밭으로 가는 도중인데 길가 양쪽에 문들을 꼭꼭 잠근 조그만 집들이 나란히 서 있었고 이 집들을 보게 되자 어쩐 일일지 갑자기 집이 그리워져서 채소밭으로 가서 숨으려던 처음 계획을 변경하여 어느 집이든 뛰어들어 하룻밤 피신했으면 하는 생각이 간절해지는 것이었다. 그래서 뛰면서도 연해 이집 저집을 물색하다가 마침 어느 조그만 집 대문만이 반쯤 열려 있으므로 앞뒤 더 생각할 것 없이 이 집안으로 기어들어가 마당에 엎드리었던 것이다. 갑자기 험상궂은 사내가 뛰어들어왔으니 그 집안 사람이 놀랄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마침 남자어른은 없는 모양이어서 늙은 목소리의 부인 한 분과 젊어 보이는 색시 한 분이 방에서 나오면서 늙은 목소리가 「누구요! 냉큼 일어서 나가시오!」라고 큰소리를 치는 것이었다. 나는 엎드려 몇 번이고 머리를 조아리면서 「한 번만 살려줍시요! 도적놈에게 쫓겨오는 판이니 이 하룻밤만 감춰주십시오. 저에게도 늙으신 어머니와 어린 가족들이 집에 있습니다. 한 번만 제발 살려주십시오.」라고 애걸복걸하였다. 그러나 늙은 목소리는 끝내 나의 소원을 물리치는 것이었다. 「만약 안 나가면 고함을 지를 테야! 냉큼 나가오!」라는 것이 아닌가? 할 수 없이 이집에서 쫓겨날 때 젊은 색시의 목소리가 「여기서 조금만 더 들어가면 채소밭 속에 방공호도 있어요.」라고 가르쳐 주는 것이었다.

나는 대문 밖에서 사방을 살펴본 다음 채소밭 속으로 들어갔다. 과연 색시의 말대로 컴컴하고 넓은 채소밭 속 멀지 않은 곳에 거름 무더기 같은 방공호가 있었다. 방공호 속 밑바닥엔 물이 철벅철벅 하고 천정이 너무 낮아서 머리를 들 수가 없었다. 들어가자마자 나는 곧 철벅철벅한 물에 철썩 엎드려 조그만 출입구로 바깥을 주목하고 있었다. 원체 우리들의 전차가 너무 빨리 달렸으므로 우리들의 탈주를 알면서도 갑자기 정거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머지 않아 그들의 수색대(搜索隊)가 이 근방을 샅샅이 찾아다닐 것이 분명한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물 바닥에 엎드린 뒤 약 십 분도 채 못 되어 내 눈 앞 20미터 가량의 전방을 두 붉은 간수가 따발총을 겨누면서 지나가는 것이었다. 이자들이 곧 내가 숨어 있는 이 방공호 속으로 들어와서 「이놈! 여기 숨었구나! 빨리 나와!」라고 외칠 것만 같아서 될 수 있는 대로 나지막하게 물바닥 속으로 찰삭 엎드려 있었던 것이다. 문득 생각나기를 만약 소낙비나 좍좍 내리면 숨어 있기가 더 용이하겠고 발각될 염려도 적어질 것 같았지마는 비는 오지 않고 어디서인지 이따금 환한 조명탄(照明彈)이 하늘 높이 올라가곤 하는 것이었다.

몇 시간을 엎드려 있었는지 그 두 간수가 지나간 직후에는 몇 방 총 소리도 들렸지만 이제는 아무 소리도 나지 않고 온 세계가 죽은 듯이 고요할 뿐이다. 지금은 아마 이 방공호 속이 안전한 모양이나 이 안전성은 내일 새벽이면 그만 없어질 것이오, 날이 밝기만 하면 사람들이 이곳에 올 것이니 그러면 맨발에 머리는 한 발이나 되고 낡아빠진 양복 「샤쓰」 그리고 왼쪽 팔에 두 개씩 고랑쇠를 달고 있는 나를 그대로 놓아둘 리가 없을 것이다. 탈주한 죄수가 분명한 만큼 당장에 붉은 군대에게 붙들려가서…. 하물며 아직도 서울 전체가 붉은 세력 밑에 놓여 있는 셈이니 나의 아무 힘도 없는 벌거숭이 몸 한 개로서 세계적인 「스타린」과 생명을 싸우고 있는 것이 아닌가? 얼마나 처량한 싸움이랴! 내일 아침이면 나의 주검으로서 끝나고 말 이 하룻밤만의 싸움! 그렇다면 이곳 방공호 속에서 그대로 주검을 기다리고 있을 수도 없는 일이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나? 아마 붉은 수색대는 돌아간 모양이다. 날이 밝기 전에 다른 살 길을 찾아야만 하겠다.

나는 가만히 일어서서 방공호 문간까지 기어나와 고개만 내어밀어 한참 동안 사방을 둘러보고 위험이 없다는 판단을 얻은 다음 아까 뛰어 들어왔던 그 길로 다시 걸어나가기 시작하였다. 행길 전차 선로를 건너가기만 하면 거기서 약 15분이면 내 집 나의 그리운 안암동 집까지 갈 수 있겠다는 생각에서 가만가만히 집들 담벼락에 붙어서 걸어나가는 것이었다. 그러나 거진 행길까지 나갔을 때 별안간 창고문 같은 것을 여는 요란한 소리가 들려오고 그뿐 아니라 사람들의 웅성거리는 말 소리까지 가까운 데서 들려오는 것이었다. 도저히 건너갈 수도 없는 일이다. 그래서 할 수 없이 다시 되돌아서서 방공호 속으로 기어 들어오고 말았다. 다시 물바닥에 엎드리기는 하였으나 이야말로 진퇴양난이라 이곳에 그냥 있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바깥 어느 곳으로 갈 곳도 없고. 그렇다! 아까 나가던 방향에 지장이 있을 것 같으면 그와 반대로, 즉 왕십리 쪽으로 나가보자! 이것이 투쟁의 원칙이 아니랴!

그래서 나는 또 한 번 여기서 기어나와 넓은 채소밭을 남쪽으로 향해서 노상 기어가기 시작하였다. 걸어가다가는 곧 누구에게 들키고 말 것 같아서다. 얼마 동안을 기어왔는지 지난 석 달 동안 밀 한 옴큼씩만 먹고 살아온 몸에 무슨 기운이 남아 있으랴! 이젠 더 기어갈 기력도 없어 마침 눈앞에 거름무더기 같은 것이 있기에 여기 기대서 한참 동안 쉬기로 하였었다. 그런데 이것은 거름 무더기가 아니었고 공교롭게도 사람이 끄는 달구지(일본말로 구루마)였던 것이다. 달구지 밑으로 기어들어 이젠 엎드리지 않고 똑바로 누워 그리고도 온 신경은 발각에 대한 경계만에 집중되고 있었던 것이다. 몇 분인지 쉬고 나니 좀 정신이 나고 기운도 차릴 수 있었다. 이때다! 이 달구지를 새벽에 끌고 나간다면 누구나 나를 노동자로만 생각할 것이 아닌가? 됐다! 그러면 살 수 있다! 어디 그러면 이 달구지는 내 힘으로 끌 수 있는 것일까? 기어나와 일어서서 이모저모 달구지를 검사하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마침 보니 달구지 위에 물통이 두 개, 그리고 그것을 미는 막대기까지 있지 않은가? 그러면 달구지를 끌 필요도 없이 물통을 메고 나간다면? 이 훌륭한 생각, 아니 이 위대한 기적에 나는 그 자리에 다시 엎드려 하느님에게 정성껏 감사 기도를 올렸던 것이다.



이제야 살 길이!

새벽녘에 물통을 메고 채소밭의 노동자처럼 남쪽으로 나가자! 그 먼저 나의 모습을 노동자처럼 꾸며야겠고 우선 무엇보다도 디롱거리는 고랑쇠를 처치해야만 하겠다. 첫째로 나는 바로 달구지 앞에 있는 웅덩이 같은 곳에서 물과 흙을 손바닥으로 펴서 팔뚝과 다리와 얼굴 목까지 처덕처덕 검은 빛이 되도록 발라 대었다. 창백한 피부를 「카모후라지」 하기 위해서다. 그리고는 「와이샤쓰」를 찢어 수건을 만들어 머리에 쓰고 마침 석 달 전 잡혀갈 때 신었던, 양말을 주머니에서 꺼내어 두 손에 끼어 마치 얼핏 보면 장갑처럼 이것으로 고랑쇠를 감추어 덮을 수 있었다. 이빨로 물어뜯어 손가락 나올 틈을 만들었다. 「와이샤쓰」를 또 찢어 길다란 대님을 만들어 손에 신은 양말을 흘러 내리지 않게 동여매었다. 이젠 이만하면 노동자처럼 속일 수 있을 것 같다. 됐다! 이젠 살았구나!

새벽을 기다리는 동안 달구지 밑에서 편히 쉬기로 하고 두 다리를 쭉 뻗고 누웠다. 비로소 온몸이 풀리면서 추움이 느껴지는 것이었다. 저쪽 영등포 쪽일까? 연속해서 탐조탄이 올라가고 비행기 소리가 나고, 또 자주 대포 소리 폭격 소리도 났다. 아군이 아마 가까이 쳐들어오는 모양이구나! 오늘밤만 여기서 살아나간다면 얼마 안 되어 서울은 다시 우리들의 서울이 될 것 아닌가! 살자! 어떻게 해서라도 살아나가 그리운 가족들을 한 번이라도 보고 싶구나! 이윽고 먼동이 트고 날이 훤해지는 것 같다. 나가려는 남쪽 저쪽에 누구인지 담뱃불이 반짝 어린다. 저리로 가자. 그것이 붉은 군대라도 무슨 상관이랴. 나는 채소밭 노동자요, 그리고 사람이 그다지도 그리웠었다. 처음 계획으로는 물통 두 개를 멜 작정이었으나 하나만 막대기 뒤에 달아 등 뒤로 메고 담뱃불을 향해서 태연히 걸어나갔다. 그것은 붉은 군인이 아니라 그도 노동자였다. 「어따! 일찌감치 나가는구려.」라고 저쪽에서 먼저 인사를 하지 않는가? 나도 웃으면서 인사 대답을 하고는 천천히 개천 가로 굽어나갔다. 이 개천만 타고 올라가면 신설동(新設洞)을 지나 안암동(安岩洞)이 있고 거기엔 나의 가족이 살고 있는 바로 내 집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가고 싶어도 내 집에 아직 갈 수 없는 일이다. 동리서 곧 알게 될 것이오, 철없는 자살 행위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우선 서울이 탈환될 때까지 어느 친구 집에 가서 숨어야겠다.



죽마고우도 거절

그러면 누구의 집으로? 될 수 있는 한 여기서 멀지 않은 곳으로서 평소부터 나와 지극히 친한 사람이어야겠는데 대관절 누가 가장 마땅할 것인가? 문득 생각나는 대로 청량리 전차 선로를 건너 물통을 연해 덜커덩거리면서 경마장 저쪽 신설동 행길에서 조금 들어간 골목 안 석소아과(石小兒科)의 석 선생을 찾아 갔었다. 그러나 몇 번이나 문을 두들겨도 인기척이 없더니 어떤 중노인 여자 한 분이 지나가면서 「누구를 찾소?」 「여기 석 선생님 사시지 않습니까?」 「그분은 벌써 오래 전에 다른 곳으로 떠나가셨다오.」
나는 골목 밖으로 다시 나와서 이번엔 오른편 신설동 배(裵)군의 집을 찾아갔다. 이 사람은 나와 동창 친구이요, 남달리 가까운 죽마고우인 것이다. 그러나 일제 시대부터 공산주의자이었고 더구나 이번 동란 이후로는 어느 인민위원회의 간부가 되었다는 소문까지 높은 친구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죽마고우인 나를 그리 푸대접하지는 않을 것 같고 더구나 날이 훨씬 밝아지면 나의 정체가 탄로될 것이니 그 전에 어디든 빨리 가서 숨어야 하겠기에 이 배군 집을 찾아간 것이다. 마침 집에 있기에 맨발 그대로 방으로 들어가서 그의 권하는 담배를 오래간만에 피워 물자 그는 「이 사람 도대체 어떻게 된 셈인가? 자네 붙들려갔다는 소문은 들었었는데 지금 이 꼴은 어찌된 일인가?」라고 묻는 것이었다. 나는 전말을 대강 이야기한 다음 「무엇보다도 내 어머니가 보구 싶어서 죽기로 탕치고 한 번 탈주해봤네.」라고 하였더니 그는 혀를 툭툭 차면서 「그 참 좋은 기회를 놓치었네. 그냥 이북으로 끌려가지 왜 이 사람아 탈주를 했단 말인가! 당장에 총살일세! 그리고 자네가 여기 내 집에 있다가 붙들린다면 나까지 총살될 것이니 어서 일어서서 다른 곳으로 가게.」라고 냉정히 축출 명령을 내리는 것이었다. 붉은 사람이란 누구나 손톱만한 인정도 가지지 않는다는 것은 이미 들어서 알고 있었던 바이나 이다지도 철저할 줄은 상상하지 못하였던 것이다. 그래서 그가 나를 고발하지 않는 것만이라도 고맙게 생각하고 그의 부인에게 「헌 양복바지, 와이샤쓰 한 개만 빌려주세요. 그리고 헌 신발 한 켤레하구요.」



고랑쇠를 벗다

부인이 준 낡아빠진 양복바지, 와이샤쓰를 옷 위에 그대로 덮어 입고 수건을 얻어 얼굴과 손을 대강 씻은 다음 「여보게 다른 데로 가기는 허겠네마는 그 먼저 이 고랑쇠를 좀 열어주기나 허게.」라고 청해보았다. 사실 양말 장갑으로 가리기는 했지만 여간 위험한 것이 아니었고 현재도 아파서 못 견딜 지경이었던 것이다. 「그럴 시간이 어디 있나? 다른 데 가서 천천히 열게나 그려.」라고 이것마저 거절하는 말을 듣고는 곧 물러나오고 말았다. 들어설 때 현관 구석에 둔 나의 생명의 은인 물통과 막대기는 「이건 빠개서 불이나 때게.」라고 한 다음 냉큼 밖으로 나오고 말았다. 이젠 노동자가 아니라 낡은 양복이나마 깨끗이 갈아입고 뒤축이 무너진 구두라도 신었으니 얼핏 보아선 머리에 수건을 동여매고 알뜰한 공산주의자가 아침 산보로 나온 것이 의심되지 않을 것이다. 나는 그에게서 또 한 개 얻은 담배를 비스듬히 물고 가장 태연자약하게 안암동 내집 쪽으로 걸어가되 내집을 아래로 내려다볼 수 있는 성신여학교 앞길을 택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목적지는 바로 미아리 고개 밑 손평조(孫坪照) 선생 댁이다. 벌써 해가 돋아 집집마다 사람들이 몰려나와서 집 앞에 방공호 구덩이들을 파고 있었다. 막 손 선생 댁 문 앞까지 갔을 때 이건 또 웬일인지 두깨 없는 짚차가 한 대 있고 그 위엔 붉은 군인이 몇 사람 타고 있지 않은가? 만약! 나의 불숙한 왼쪽 팔목만 헤쳐 본다면…. 그래서 손 선생 댁으로도 들어가지 못하고 돈암동 전차 종점을 건너 박제순(朴濟循) 선생 댁으로 갔었다. 대문을 연 분이 바로 박 선생이었고 나를 보자마자 아무 말 없이 끌어들이고는 대문을 다시 굳게 잠근 다음 건너방으로 데리고 들어가는 것이었다. 「아니 어떻게 살아나왔소? 반갑기 한이 없구려!」라고 기뻐하면서 세숫물을 손수 떠오는 것이었다. 박 선생의 협력으로 겨우 고랑쇠를 열어 풀어논 다음 얼굴과 팔다리 등을 씻고 보니 이젠 정말 살아났다는 「삶」의 기쁨을 새삼스럽게 느끼는 것이었다.





가족을 만났으나

아침 흰밥, 콩나물국, 생선, 그리고 무엇보다도 박 선생의 따듯한 우정! 박 선생의 연락으로 차례차례 가족들을 불러보았다. 그런데 형님을 뵈옵자마자 하시는 말씀이 「네가 그리 된 뒤로 집안에 큰 변란은 없었다마는 도훈(道勳)이란 놈이 대단히 아프다. 벌써 두 달이 넘도록 앓고 있는데 이젠 죽기만 기다릴 뿐이다.」라고 하시는 것이었다. 「도훈」이란 것은 나의 끝아들 네 살짜리 어린것인데 바로 감방 안 꿈 속 묵시로서 천사께서 나 대신 데리고 가겠다고 하신 그놈인 것이다.

이젠 끝을 간단히 맺어야겠다. 박 선생 댁에 9월27일 저녁, 즉 아군이 서울 종로까지를 탈환 점령하고 이곳 돈암동 쪽은 아직 탈환되지 않았으나 「바리케트」엔 붉은 군인이 한 사람도 없이 다 피해 버린 그날 저녁 나는 나의 딸과 더불어 비로소 안암동 내집으로 들어간 것이다. 밤새껏 장거리포의 우렁찬 소리와 기관포 기관총의 씩씩한 소리와 그리고 가족들의 한 없이 기뻐하는 이 소리 저 소리와 나의 이야기 소리 등으로 밤을 밝히고 이튿날 28일 아침, 딸의 「아버지! 돈암동도 이제 완전히 탈환되었어요. 벌써 태극기 달은 집도 있어요!」라는 보고로 나는 곧 바깥으로 나가려다가 다시 앉아 하느님에게 감사 기도를 올린 다음 「하느님이시여! 전지전능하신 하느님이시여! 하느님의 기적은 저를 이와 같이 살려주셨나니 다시 한 번 기적을 내리시와 이 어린 자식마저 살려주시옵소서.」라고 욕심 많은 애원을 올린 것이었다. 이틀 후인지 나를 찾아온 윤(尹)군의 안내로 이용훈(李容勳) 소아과 박사의 치료로 그다지도 절망 상태에 있던 「도훈」이는 점점 쾌해져서 지금은 벌써 초등학교 2학년생이다. 그래서 그때부터 「도훈」이는 죽었고 하느님께서 다시 자식 하나를 주신 것이라고 해서 천훈(天勳)이라고 이름을 고친 것이다.



다시 피난의 봇짐

이와 같이 나는 하느님의 기적으로 탈주·생환하였는데 그 뒤 소식을 들으니 결사대의 손군과 차군은 역시 채소밭에 숨었다가 새벽에 집으로 돌아가서 살아났으나, 다른 세 사람은 모두 붉은 총알에 쓰러지고 만 것이라 한다! 그러고 보면 「스타린」과의 투쟁에서 6명 중 3명이 살았으니 절반의 희생으로 우리들이 승리한 셈이라 할 것이다.

그러나 갱생의 기쁨이 아직도 사라기 전에 중공군의 침입으로 다시금 서울을 뒤로 12월 12일 가족들을 트럭에 싣고 남으로 남으로 달아나는 나는 사정없이 불어오는 눈보라를 「트럭」 꼭대기에서 그대로 맞으면서 「탈주는 했었지만 6·25 사변 죽음에서 살아나기는 했었지만….」 또 앞으로의 닥쳐오는 숙명이 너무나 잔인해서 너무나 기가 막혀 「어디로 가서 어떻게 살아야 하나?」라는 새로운 삶의 걱정이 태산처럼 밀려올 뿐이었다. 인생이란 끝없이 넘어가는 태산준령(泰山峻嶺)의 연속일진데. 아! 언제나 마음놓고 두 다리 뻗치고 사람다운 삶을 얻어볼 수 있을 것이랴? 붉은 악마들의 무력뿐이 아니다! 거기다가 우리끼리의 물고 뜯는 갖은 모함, 온갖 중상! 어지러운 세파(世波)여! 캄캄한 앞길이여! 어디로 가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눈보라 속을 그래도 헤치면서 우리들의 「트럭」은 남으로 남으로 달려가고 있는 것이다. 얼어붙은 한강을 타고 피난의 대열이 줄지어 남으로 내려가고 있다. 역사는 이어진 백의의 민족의 무엇이 마땅치 않아 혹한과 굶주림과 포화 속에 목숨을 건 시련을 당하게 하는 것인가. 악귀와 같은 붉은 떼들의 포성은 자꾸 가까워온다.


나는 다시 놈들에게 시달리던 그 무시무시한 여러 장면들을 머릿속에 그려본다. 그리고 이렇게 무턱대고 남으로 내려가야 하는 나 자신과 이 대열이 안타까워 못 견디게 된다. 아니다! 돌아서자! 놈들을 쳐부수자. 우리들 괴롭히는 것은 역사가 아니고, 역사를 이렇게 돌리려는 놈들의 비인간적인 수단과 방법이다! 나는 이렇게 몇 번인가 속으로 외쳤다. (끝)

- 4288(1955)년 2월 1일 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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