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완 전 북한정무원 부부장 공개(증언 납북인사 그때 그순간 3) 조소앙 항의단식 끝에 숨져 납북후 사상
  이름 : 관리자 날짜 : 2005-09-26 11:50:15 조회 : 1663  
  파일 : 19911004-2.pdf
전쟁으로 피폐해진 북한사회에 박헌영사건 이란 지뢰가 터졌다. 그 폭발음은 1953년 상반기에 사상검토 란 방식으로 북한전역을 진동했다. 사상검토회의는 이해 3월초부터 시작해 6개월간 진행되었다.

북한관계자들은 1948년 4월 남북협상에 참여한 원로들에게 협상당시 박헌영 등과 관련된 사실을 들추어 집요하게 캐물었다. 납북인사 일행 50여명에 대한 개별담화(심사)는 20여일 동안 계속되었다.

심사자들은 박헌영과 미군사령관 하지,이승엽과 노블(하지의 정치고문)의 접촉사실과 안영달 조용복 백형복 설정식 등에 관한 자료 등을 종합해 남로당 간부들의 죄상을 묻는 문제에 납북인사 일동의 서명을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관계자들은 서명을 거부하는 사람들을 따로 모아놓고 회유와 설득을 되풀이했다. 조소앙 조완구 오하영 원세훈 등 끝까지 서명을 거부한 사람들은 외출제한 등의 조치를 받았다.

1954년 2월 하순. 납북인사들을 안내했던 김관섭과 평양 내무성이 낯선 두 사나이가 나타나 몇분과 대화를 나누고 싶다고 했다. 그들은 극히 일상적인 생활주변과 관련된 문제들을 묻고 돌아갔다.

며칠후 내무성 관계자들이 다시와서 "사실인즉 두만강을 도강하려다 체포된 자들의 입에서 여기 계시는 어느분이 중국에 건너가서 물건도 사오고 그곳 형편도 알아오라 해서 그분 말대로 했다고 말하고 있다. 그놈들은 춘삼월 진달래꽃 피면 미군이 다시 진격한다. 그때를 기다려 암약하자 고 음모를 꾸민 일이 있다"는 얘기를 했다.

그들은 자세한 조사를 위해 송호성 김효석 엄항섭 등을 연행하겠다고 나왔다. 이 말을 듣고 조소앙이 세사람을 연행하려면 일행을 모두 연행하라고 요구했다. 일행은 다음날부터 단식투쟁에 들어갔다.

연락부 박 부장과 최 부부장이 평양에서 내려와 "이번 사건은 중대한 사안이지만 더 이상 확대하지 않고 관대하게 처리하라는 지도부의 지시에 따라 더이상 문제삼지 않기로 했다"고 말했다.

1954년 4월 들어 임정요인들은 자신들의 제언을 전하기 위해,국제회의가 열리는 제네바에 보내달라고 요구했다. 이의 관철을 위해 일행은 다시 단식투쟁을 시작했다.

이윽고 연락부의 박 부장과 최 부부장이 와서 요인일행이 추천한 엄항섭과 권태석이 제네바로 들어갈 수 있는 입국사증을 받기위해 외무성관리의 안내를 받아 모스크바로 떠날 수 있도록 조치했다.

두사람은 평양에서 모스크바행 열차를 타고 대륙을 횡단한 끝에 10일만에 모스크바에 도착했다. 그들은 제네바로 들어가는 입국사증을 얻기위해 현지 북한대사관 골방에서 무작정 기다렸다.

그러나 여드레만에 나타난 북한대사는 "제네바 입국사증을 얻지못해 갈수없게 되었다"고 둘러댔다.

두사람은 돌아올때는 소련 비행기를 타고 이틀만에 평양에 내렸다.

도착한날 오후에 박 부장과 외무성 간부가 와서 사정을 설명하면서 이해를 구했다. 그러나 분을 삭이지 못한 엄항섭은 며칠동안 이불을 둘러쓰고 누워 일어날줄을 몰랐다.

이 무렵 김일성은 해방 10주년이 되는 1955년 8월15일을 계기로 평화통일 공세를 펼칠것을 구상하고 있었다. 그는 이러한 의도를 효과적으로 실현할 수 있는 대상으로 임정요인들을 꼽았다.

당국은 요인들에게 최고인민회의가 제기한 남북 연석회의 및 국회합동회의의 소집 제안을 지지-찬동하는 공동성명을 먼저 발표하고,연석회의 또는 국회 합동회의의 준비에 적극 참여하여 공개적인 정치활동을 펼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요인들은 공동성명과 담화를 발표하기전에 당을 재건하고 자유로운 활동을 보장해 줄것을 요구하여 양측이 팽팽히 맞섰다.

1955년 11월12일 밤 모란봉구역에 있는 3호 청사의 최 부부장 사무실에서 최 부부장,홍증식 조 과장 등 세사람이 머리를 맞대고 공동성명 대책을 숙의했다. 홍증식은 요인들이 주장하는 중립화안과 정치활동 보장문제를 초안에 넣어 서명을 받은다음 발표할때는 본문에서 그 내용을 빼버리자는 뜻밖의 제안을 했다.

이러한 초안에 따라 세사람은 조소앙 송재홍 오하영 등의 서명을 받은 것을 끝으로 요인 일행의 서명을 모두 받아냈다.

그들은 서명을 받을때 썼던 초안에서 두가지 쟁점사항을 빼버리고 자신들의 진짜속셈을 담은 공동성명을 작성해 1955년 11월13일 발표하고 말았다.

임정요인들은 공동성명이 초안대로 발표될 것으로 믿고있다가 뒤늦게 속았다는 것을 알고 대노했다. 요인일행은 당국의 정치적 기만극을 강력히 항의하는 한편 독자적인 정당(한독당)의 결성을 추진했으나 여의치않자 결국 당국과의 타협끝에 1956년 7월2일 오후1시 재북평화통일 촉진협의회 를 결성했다.

협의회는 출범이후 5개월 동안 나름대로 힘든 노력을 기울였지만 회원들의 복지를 향상시킨것 외에 평화통일을 추진하고 독자적인 목소리를 낸다는 본질적 과제를 실현하는데는 아무런 성과도 올리지 못했다. 이런 가운데 김일성은 1957년부터 김두봉 최창익을 비롯한 연안파를 숙청하는 등 강경분위기로 북한사회를 이끌어 갔다.

노동당 지도부는 이에 따라 중앙당 집중지도사업 을 전당적-전국적으로 펼치고 재북 평화통일 촉진협의회에 대해서도 탄압을 공식화했다.

집중지도 그룹은 1958년 7월초 그들의 횡포에 앞장서 저항해온 엄항섭 명제세 노일환 등이 협의회를 반당-반국가-반혁명 단체로 전환시켜 반당-반혁명적 행위를 시도했다는 이유로 체포해 사회안정성으로 하여금 조사토록 했다. 윤기섭 송호성 김장열 오정방 명제세 등이 협의회 사무실에서,조소앙 안재홍 오하영 최동오 원세훈 등이 조소앙 자택에서,현상윤 백관수 손진태 등은 병원에서 "죽음으로써 당국의 부당한 폭거에 항의하겠다"고 비장한 단식투쟁으로 돌입했다.

사회안전성에 연행된 사람들도 조사를 거부하고 단식으로 항의하던중 학질에 걸렸다. 사회안전상 방학세는 모시기공작 때부터 요인들을 익히 아는데다 집중지도그룹의 지나친 처사를 내심으로 동의하지 않던차에 이들이 발병하자 재빨리 입원시켰다.

이후 58년 9월10일 조소앙이 단식투쟁끝에 평양 남산병원서 사망한 것을 비롯,납북요인들은 휴양소나 특별강습소 등에 사실상 구금돼있다 차례로 숨졌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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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1991년 10월 4일 2면 기사내용

신경완 전 북한정무원 부부장 공개(증언 납북인사 그때 그순간 3) 조소앙 항의단식끝에 숨져
납북후 사상검토 - 집중지도 빌려 탄압강화
엄항섭, 제네바행 기만 에 이불쓰고 분삭여
명제세등 요인들 57년 이후 "사실상 옥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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