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납북인사 북한생활기 - 죽음의 세월 17회 1962. 4. 16
  이름 : 관리자 날짜 : 2005-10-05 16:42:17 조회 : 1419  
  파일 : 19620416-2.pdf
납북인사 북한생활기 - 죽음의 歲月 17

1962년 4월 16일 동아일보에서


죽음의 歲月 17


납북인사 북한생활기


단벌옷으로 越冬
將棋두는 것이 單 한가지의 樂
날마다 共産講義 받아


50년 12월 초순 심사결과 협상파 및 저명인사들이 수용되어 있는 別午里 祖統합숙소로 옮겨간 張蓮松 趙鉉勝 金義煥 申錫斌을 제외한 나머지 일반국회의원들은 그대로 滿浦에서 약 二십리 떨어진 농가에 수용되었다.

특별 파견된 당간부와 祖統간부들은 이들에게 자서전 특히 남한에서의 경력을 상세히 기록케 하는 한편 일과표를 만들어 엄격한 규율생활을 하게 하였다. 그러나 와병중인 金禹植 許永鎬 具中會 등 병자는 여기서 제외되었다.

노인은 노인대로 장년은 장년끼리 따로 나누어서 一주일에 두 번씩 찾아오는 강사와 토론하기 위해 겉장이 낡은 공산 서적을 뒤적이어야 했다.

서무책임자로 崔炳柱가 임명되어 그는 보름마다 別午里수용소까지 가서 옥수수, 쌀, 된장, 소금 등을 배급받아 썰매에 싣고 와서는 동료들이 수용된 집집마다 나눠주었다. 밤이면 배급받은 몇 꼬치의 담배를 놓고 투전하는 것과 장기 두는 것이 유일한 낙이라면 낙이었다.

어느 날밤 別午里로 연극구경을 간다는 소식에 이들은 모두 기뻐했다. 구경이라야 뻔한 것이지만 감금생활을 하는 이들에겐 「추럭」에 실려 거리로 나간다는 것만도 위안이 아닐 수 없었다. 구경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이들은 소지품과 滿洲에서 흘러나온 「백알」을 바꾸어 가지고 와서 오랜만에 취하도록 마셨다. 그러나 워낙 쇠약한 몸이라 술기운에 지쳐 모두 토하고 늘어졌다.

강의시간마다 대개는 졸기가 일수였는데 그럴 때면 강사는 『당신네 같은 사람이 이남에서 정치를 했으니 잘될 리가 있소? 국사를 논하는 의사당에서도 그렇게 졸았을 게 아니요. 나도 내 마음대로 이곳에 오는 게 아니라 상
부명령에 의해 오는 것이니 정 그렇다면 별도 조치하겠소.』하고 소리를 질렀다.

이에 성급한 金雄鎭이 『이미 四十이 훨씬들 넘은 데다 먹지도 못해 몸도 쇠약한데 그런 것쯤 이해해줘야지 그런 몰지각한 언사는 심하지 않소.』하고 대들었다. 이 사건으로 즉시 金雄鎭은 別午里 祖統으로 끌려가 三일간 고통을 받고 기진맥진하여 돌아왔다.

그러나 동네 주민들은 모두 이들 납치인사를 가엾게 생각하여 엿, 옥수수, 떡 등을 갖다주곤 하였다.

한편 문화재 저명납치인사인 柳子厚, 金憶, 李白水등 수십 명은 납치된 고급관리와 법조계인사 즉 刑德基, 李潭, 姜柄順 등 일단과 함께 커다란 두 농가에 집단 수용되었다. 동네서 이불을 징발하여다 나누어주긴 하였지만 이불하나에 七, 八명씩 누비옷을 입은 채 자야했기 때문에 까맣게 때가 오른 옷주제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부득이 옷을 빨아야 할 때는 자기 단벌 옷을 벗고 남의 옷을 빌려 입은 다음 냇가로 나가서 얼음을 깨고 빨래를 하였다. 이렇게 빨래를 하는 동안 옷을 빌려준 친구는 방안에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누워있어야 했다.

역시 이들도 자서전을 쓰고 매일 공산주의 강의를 받았다. 담배라곤 이따금 배급주는 장수연뿐 그나마 형편없이 양이 적었다. 모두 성격이 온순하고 글을 좋아하여 심심풀이로 동네 아동들을 데려다 글공부를 가르쳤는데 이도 감시원의 제지로 며칠 안가 중단되었다. 특히 동네에 있던 한 노처녀는 시인 金億을 사모하여 빨래도 하여주고 여러 가지 시중을 늘 자진해서 들어주었다. 金億 역시 외로운 처지에서 그녀를 고마워하였다. 그러나 오래가지 않아 이 사실이 탄로되어 노처녀는 그 동네에 있지 못하고 딴 곳으로 추방되고 말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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