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납북인사 북한생활기 - 죽음의 세월 22회 1962. 4. 21
  이름 : 사무국 날짜 : 2006-12-14 01:11:48 조회 : 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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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북인사 북한생활기 - 죽음의 歲月 22

이름 : 운영자 번호 : 52
게시일 : 2001/02/19 (월) PM 02:52:12 조회 : 27

1962년 4월 21일 동아일보에서
죽음의 歲月 22

납북인사 북한생활기


趙素昻등 넷에 特待
爆發한 鬱憤… 싸움판이 된 野遊會
말썽난 朴烈은 따돌려


大同군 始族면 일대의 농가에 묵고 있던 四九명의 저명납치인사 중 趙素昻, 安在鴻, 嚴恒燮과 와병중인 趙琓九 四명만은 특별히 임원리로 옮겨 기거하게 되었다.

이것은 祖統이란 이름을 내걸고 그 간부들이 이들 四명의 인사에게 특우대 격식을 취하는 척 가장하였지만 그실 당의 지시에 따라 始族면일대에 분산되어 있는 저명납치인사 및 그 밖의 인사들까지도 각자의 정치적 이용가치를 결정하는데 있어 최고 참모역할을 시키려는데 있었다.

이 때부터 祖統간부인 洪增植은 소련제 「찦」차를 타고 일주일에 수차 찾아와서는 몇 시간씩 이들 四명과 밀담을 하고 돌아가곤 하였다. 그때마다 와병중이긴 하지만 趙琓九는 자리에 누운 채 洪增植을 보고 『납치인사들을 빨리 적재적소에 배치시켜 직업을 주도록하라』고 간곡히 일렀다. 趙素昻역시 이에 동의하였다.

그러나 洪增植은 아직 빠르다고 말하면서 사상교육을 더욱 엄밀히 시키고 그중 선발하여 당학교에 보낸 후 배치하기를 주장하였다. 특히 洪은 한사람 한사람 심적동향, 사상동태, 자서전 등을 통하여 조사된 서류를 들고 와서 정치적 이용여부와 기타 이용도를 심각히 이들 四명에게 심문하였다. 뿐 아니라 정치 보위부원들도 찾아와서 꼭같은 질문을 하고 하였다.

그때마다 趙素昻은 나쁘다, 좋다 하지 않고 둥글둥글하게 원만주의를 취하였고 安在鴻은 온건한 태도를 취하였다. 그러나 嚴恒燮만은 한사람씩 이름을 도마 위에 올려놓고 비판을 가하였다.

이들 四명은 간혹 동료납치인사들과 만나는 일도 있었으나 늘 감시원의 눈초리가 뒤따랐다. 吳夏英, 尹琦燮, 金孝錫, 宋虎聲도 한집에 기거하고 있었는데 그 나머지는 五, 六명씩 분산되어 있었고 국회 「뿌락지」사건의 주모자인 金若水, 李文源, 盧鎰煥등은 한사람씩 이집저집 끼어있었다.

이곳에서도 一주일에 二회씩 강사가 와서 십명 내지 십五명을 기준으로 좌담회식 강의를 하였고 매일 자기네들이 제공하는 공산서적을 읽게 하였다. 그러나 趙素昻 등 四명만은 극우대를 하여 배급품도 후히 주고 자유로이 가까운 냇가에 나가 목욕도 하게 하였다.

祖統에서는 여름철에 접어들자 이들 납치인사를 위안한다는 뜻에서 주류와 음식을 잔뜩 만들어다 놓고 십여명식 반을 짜서 야유회를 베풀었다. 그때 宋虎聲, 金孝錫, 金七星, 朴烈, 金憲植등 십여명이 한패가 된 곳에서는 일대 소동이 벌어졌다. 그것은 宋虎聲, 金孝錫, 金七星, 등이 술에 취하여 주정을 하기시작한데서 비롯하였다.

보다못한 朴烈과 金憲植이 『무엇이 좋아서 야단들이냐?』고 소리치자 宋虎聲이 키가 작은 朴烈을 보고 『너 같은 조막동이는 주객의 기분을 모른단 말야.』하는 바람에 두 사이에 시비가 벌어졌다 인솔책임자마저 朴烈을 보고 『어디가나 왜 그리 말썽이냐』고 부채질을 하였고 여기에 또 金七星까지 뛰어들어 『저 사람은 무정부주의자기 때문에 우리와는 성격이 틀린다.』고 말하여 화가 난 朴烈은 『이 친일파 놈들이 무슨 큰소리냐!』하고 대판 싸움이 벌어졌다.

이 통에 金七星은 朴烈에게 물려 옷이 갈기갈기 찢어졌고 간신히 인솔책임자가 말려 집으로 돌아 왔다. 그러나 집에 돌아와서도 밤늦게 까지 옥신각신 싸움이 벌어져 동네사람들이 밤잠을 못 이룰 지경이었다.

다음날 이일로 하여 朴烈은 딴 곳 숙소로 옮겨졌다. 그러나 어디를 가도 성질이 표독하여 朴烈을 가까이 하려는 사람은 없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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