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납북인사 북한생활기 - 죽음의 세월 36회 1962. 5. 11
  이름 : 사무국 날짜 : 2006-12-15 17:34:15 조회 : 2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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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북인사 북한생활기 - 죽음의 歲月 36

이름 : 관리자 번호 : 67
게시일 : 2001/03/09 (금) AM 11:32:44 (수정 2001/03/10 (토) AM 07:25:39) 조회 : 21

1962년 5월 11일 동아일보에서


죽음의 歲月 36


납북인사 북한생활기


허탕친 宗敎人包攝
쓸쓸한 나날 休戰後 待遇 약간 좋아졌지만
食母보내 억지로 살림도


도중에 수많은 동료들이 병사하거나 어디론지 모두 끌려간 다음 文聖里 농가에 마지막까지 남은 南宮赫, 朴相健, 吳澤寬, 宋台用 등 십 여명의 종교계 저명 납치인사들은 쓸쓸한 나날을 보냈다.

53년 7월 27일 휴전이 성립되자 모든 것이 약간씩 풀려 형편없던 대우도 다른 납치인사들과 같이 좀 나아졌다. 괴뢰들은 어떻게든지 이들 십 여명의 저명 종교인만은 포섭하려고 갖은 애를 썼다. 그것은 앞으로 대남 정치공세에 있어 이들을 내세움으로써 북한에도 종교의 자유가 있고 진정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척 겉치레를 하기 위한 헛수작이었다.

과거 같이 입법의원을 지낸 尹琦燮이 吳澤寬을 포섭하러 왔다. 이때 몸집이 거대한 吳澤寬은 서로 인간적 정리는 느끼지만 『당신이나 나나 같은 신세가 아니요. 특히 당신이 날더러 협조운운을 하니 참을 수 없이 마음이 아프구려. 당신 본의 아닌 그런 교섭일랑 아예 말아주오.』눈물로 꾸짖었다.

본래 성품이 온순한 尹琦燮은 낯을 붉히며 그대로 돌아갔다. 그는 돌아가서 祖統간부에게 보고 할 때 혹시 吳澤寬에게 화가 미칠까 염려하여 좀더 기다리면 포섭이 될 거라고 감싸서 말하였다.

다음으로 기독교 민주동맹간부 몇이 찾아와 이들을 위로하는 한편 담화식으로 회유하려 들었다. 이때 宋台用이 『정치보위부에서는 우리와 같이 있던 수많은 목사들을 어디론가 끌어갔소. 그 동료들의 생사와 거처를 먼저 밝혀 주시오. 그리고 그들을 다시 우리와 함께 있게 해준다면 우리도 고려를 해보겠소. 그러니 우리들만 가지고는 얘기를 말아주시오.』하고 점잖게 타일렀다.

기독교 민주동맹간부들이 돌아간 후 십 여명 이들 인사는 곧 한자리에 모여 수많은 동료들이 죽고 행방불명이 된 이 마당에 끝까지 지조를 지킬 것을 다짐하는 한편 악독한 일제의 종교박해와 소위 신사(神社) 참배 강요에 분연히 일어나 끝까지 투쟁하다 순직한 朱基徹목사, 朴寬俊장로의 뒤를 따르자고 눈물로 맹세하였다.

54년에 들어서서도 이들 인사가 전연 협조 할 기세를 보이지 않고 기독교민주동맹에도 참가 할 의향이 없음을 알자 祖統에서는 이들 인사들을 모두 처치하기로 결정하였다. 그러나 嚴恒燮등 저명 납치인사들의 권유와 앞으로 종교계에 미칠 영향 등을 고려하여 다시 한번 포섭의 기회를 주기로 하였다.

포섭방법으로는 각자를 분산시켜 祖統에서 파견한 감시원 겸 식모를들을 두어 살림을 시키자는 것이었다. 吳澤寬, 宋台用은 東平壤 長春동 임시가옥으로 옮기게 하고 나머지 인사들은 西平壤 곤오골 민가에 각각 기거하게 하였다. 물론 각자마다 祖統에서 파견한 독신여자 一명씩이 배치된 것은 물론이다. 그러나 이들 종교인들은 그녀들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매일같이 기도만 올렸다.

宋台用에게 배치된 여자는 아주 성격이 팔팔한 여성이었다. 그녀는 그까짓 귀신만 섬겨선 뭣하느냐고 매일 같이 짜증을 부렸다. 그때마다 宋台用은 하나님을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고 타일렀다. 그러나 그녀는 『그런 태도라면 영 반동은 못 면하겠소.』하고 모욕적인 언사를 퍼붓는 바람에 어느 날 尹琦燮, 元世勳, 祖統간부가 방문하였을 때 부탁하여 그녀를 딴 곳으로 옮기게 하였다.

그 반면 朴相健에게 파견된 식모는 아주 성질이 온화하고 이해심이 많은 여자였다. 그녀는 朴相健이 매일같이 기도를 하며 행방불명된 동료들이 무사하기를 한결같이 비는 광경에 감동되어 자기 옷과 세간까지 팔아가며 남몰래 고기를 사다 대접도 하였다. 그러면서 『같이 살았으면…』하는 눈치였으나 끝까지 朴相健은 다만 인간적으로 따뜻하게 그녀를 대할 뿐이었다. 그리고 딴 곳으로 숙소가 옮겨질 때마다 그녀는 그림자처럼 그를 뒤따르며 돌보아주었다.

이윽고 56년 이들 인사들이 모두 어디론가 추방당하게 되었을 때 그녀는 부부이상으로 朴相健을 붙들고 석별의 정을 못 이겨 목메어 흐느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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