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납북인사 북한생활기 - 죽음의 세월 25회 1962. 4. 23
  이름 : 사무국 날짜 : 2006-12-14 14:50:15 조회 : 2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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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북인사 북한생활기 - 죽음의 歲月 25

이름 : 관리자 번호 : 56
게시일 : 2001/02/26 (월) AM 10:26:46 조회 : 19

1962년 4월 24일 동아일보에서


죽음의 歲月 25


납북인사 북한생활기


德望도 때론 禍根
名醫 金時昌도 神經衰弱에 걸려
不平 한마디에 流謫


납치된 후 滿浦에서의 괴뢰중앙당 지시로 滿浦 후방병원에 임시 배치된 신경외과의 권위자 金時昌은 51년 늦가을 平壤 三십리 밖 龍城소재 괴뢰인민군 三九호병원으로 옮겼다. 당시 金時昌의 실력은 자타가 공인하는 바였지만 괴뢰들은 그의 사상을 의심하여 당최고 간부나 괴뢰정부의 최고 고관 또는 그 가족에 대한 중요 외과수술이 있어도 간단한 것 이외에는 절대로 맡기지를 않았다.

한번은 고위간부의 긴급수술을 소련의사 한 명과 당원의사가 담당했는데 그 수술기법이 너무 졸렬하여 곁에서 보고 있던 金時昌이 『이렇게 하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고 의견을 말하였다. 물론 그의 의견을 들어줄 리 만무였다.

그런지 며칠 후 병원 정치부에서 金時昌을 불러 세우고 『당신의 실력이 얼마나 있는지는 모르겠소 만약 수술 도중 좀 잘못된 점이 있으면 선도해 나가는 게 원칙이지 그 자리에서 불만을 표시한 것은 아직 「부르죠아」사상이 농후하기 때문이요. 우리는 기술자체 보다도 사상성이 중요한 만큼 하루 바삐 그 낡은 사상성을 뜯어 고쳐야 훌륭한 의사가 될 수 있는 거요.』 하고 힐책하였다.

이때 金時昌은 『나는 원래 정치엔 무관심한 사람이요 다만 그 수술광경을 보았을 때 그 분야에 종사해온 한사람으로서 의견을 말했을 뿐이요. 불만은 터럭 끝만치도 없소.』하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정치부원은 『그 말 자체가 사상성이 아직 미약한 때문이요. 될 수 있는 한 빨리 사상개조를 하시오.』하고 꾸짖었다.

이 일이 있은 후 마음이 약한 金時昌은 일체 무간섭주의로 나갔다. 그러나 원체의 실력이 있는 만큼 의사들 사이에는 그 실력이 높이 평가되어 은근히 金을 숭배하였다. 그러나 당원 의사 하나가 이를 시기하여 사상성이 나쁘다고 늘 정치부에 보고하는 바람에 제일 큰 이 三九호병원에서 멀리 寧邊 근처 조그마한 후방 인민군 병원으로 쫓겨났다.

그러나 얼마안가 그 병원에서도 金時昌이 고명하다는 소문이 자자하게 되었다. 마침 이 병원을 위문시찰차 내려왔던 괴뢰당 부위원장 朴正愛가 이 소문을 듣고 직접 金時昌을 불렀다. 그리고 그의 수고를 치하하는 한편 무슨 애로가 있으면 말하라고 말하였다.

이때 金時昌은 『나는 순수한 학문 연구에만 몰두하고 싶소. 그러니 직맹(職盟)회의다 뭐다 하루에도 몇 시간씩 불려 다니게 되니 그런데 나가는 시간을 연구에 돌리게 해주시오. 그리고 또 한가지는 정치부에서 사상성이 나쁘니 어쩌니 하고 매일같이 나를 괴롭히니 이 점도 앞으로 좀 없애주시오.』 하고 부탁하였다. 이에 朴正愛는 회의자체는 교양 사업이니 만큼 꼭 나가야 하지만 그의 온갖 편리를 봐주마고 확답하였다. 이 일로 해서 정치부는 더욱 金時昌을 미워하였다.

그 당시 이 병원에서는 서울 女醫大 출신으로 자진 월북한 여의사 李회은이 金時昌과 같이 배치되어 있었다.
어느 날 李회은은 벗고 누워서 찍게끔 되어있는 구식 소련제 「렌드겡」이 너무 불편하다고 말하면서 남한에는 간편한 신식 「렌드겡」이 병원마다 있다고 불평을 한 것이 정치부에 보고되어 그녀는 소위 당회의에서 규탄을 받은 후 平北 鐵山 광산으로 추방되어 위생원겸 경노동에 종사하는 신세가 되었다.

이 통에 金時昌도 덩달아 정신이 썩었다는 규탄을 받고 매일같이 심적 고통 끝에 신경쇠약으로 입원하게 되었다. 그러나 52년 3월 괴뢰들은 金時昌을 다시 平壤으로 불러올려 의학대학에 배속하였다. 당시 북한에서는 의학자들이 굉장히 귀했기 때문이었다.

독신으로 합숙소에서 기거를 하며 형편없는 잡곡밥과 낡은 된장을 먹으며 늘 수심에 잠긴 金時昌을 동정한 나머지 동병원 朴간호장이 자기와의 동거를 요청 같이 살게 되어 金時昌은 합숙소 생활만은 면하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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