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납북인사 북한생활기 - 죽음의 세월 18회 1962. 4. 17
  이름 : 관리자 날짜 : 2005-10-05 16:45:40 조회 : 1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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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북인사 북한생활기 - 죽음의 歲月 18

1962년 4월 17일 동아일보


죽음의 歲月 18


납북인사 북한생활기


安在鴻등 다시 平壤으로
南下길에 時計팔아 燒酒 사 마시며
오랜만에 醉하자 弄談도


11월 초순부터 패잔병을 모아 재편성된 인민군과 중공군이 滿浦 楚山 방면에서 반격을 개시 12월 4일에 平壤까지 들어갔다. 이로써 滿浦에 쫓겨갔던 괴뢰중앙각기관은 12월 중순 점차적으로 平壤으로 이동을 개시하고 일부 祖統간부들만 협상파 및 저명납치인사 四九명과 함께 합숙소에 남았다.

이듬해인 五一년 3월초의 어느 날밤 갑자기 당간부가 吳夏英·趙素昻·安在鴻·嚴恒燮·宋虎聲·尹琦燮·金孝錫·朴烈등 십여명만을 집합시키고 『우리는 중국군(중공군)이 「항미원조」(抗美援朝)의 깃발아래 우리를 도움으로써 대략진출을 하였소. 여러분은 곧 平壤으로 떠날 준비를 해주시오. 그런데 가다가 중국군을 많이 만나게 되고 때로는 한집에서 또는 이웃에서 누워 잘 경우가 생기게 될지라도 절대로 그 사람들과 얘기를 나누는 일이 없도록 상부로부터의 지시니 각별히 유의하시오』하고 말을 끝낸 다음 곧 출발 준비를 시켰다.

이들 인사는 곧 그동안 배급받은 옷봉지, 양치소금, 담배 등을 보따리에 꾸려 가지고 떨어진 담요들을 뒤집어쓰고 대기중인 낡은 「추럭」에 올랐다. 한밤중 뜻하지 않은 이 소동에 놀란 나머지 인사들은 어디로 떠나는 것인가? 또는 딴 곳으로 별도 수용되어 가는 것인가? 의아심에 잠겨 모두 전송을 나왔다. 그리고 몇 달 동안 같이 지낸 정에 못 이겨 석별의 눈물을 흘렸다. 이들이 平壤을 향해 떠난 납치인사들 중의 제 一진이었다.

三월이라지만 매운 찬바람에 「추럭」위에서 밤새도록 그들은 떨었다. 江界를 거쳐 溫 의 이르렀을 때 폭격이 너무 심하여 방공호에서 쪼그리고 앉아 꼬박 하루를 새웠다.

다음날 이들은 하루를 더 묵으며 오랜만에 溫泉목욕을 하였다. 미지근하고 그리 수질(水質)이 좋지는 못했지만 묵은 때를 씻고 나니 홀가분한 기분이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이 날밤 소비조합에서 소주가 공급되어 술자리가 벌어졌다. 趙素昻은 술을 마시고 오랜만에 자위를 하며 한시를 읊었다. 尹琦燮은 술이 잔뜩 취해서 재담을 늘어놓았고 嚴恒燮은 얼굴이 벌겋게 상기되어 술을 더 달라고 교섭을 다니며 『곧 우리는 서울로 가게 될 거라』고 떠버리다가 趙素昻으로부터 『아마 당신이야 가게 될 거요. 그러나 어디 우리야 가게 되겠소?』하여 창피까지 삿다.

安在鴻은 다만 침울한 표정으로 침묵만 지켰다.

溫 을 떠날 때 嚴恒燮은 자기가 갖고있던 팔목 시계를 주민에게 팔아 그 돈으로 술과 담배를 잔뜩 사서 가는 도중 동료들에게 나누어 줘가며 인심을 썼다. 그래서 尹琦燮한테 『恒燮이 아니더면 우리는 술도 못 얻어먹고 담배도 못 피울 판이었군. 선전부장보다도 외무부장이 더 적임이었을걸 그랬어.』하고 조롱까지 했었다. 이것은 重慶임시정부때 嚴恒燮이 선전부장이었던 것을 비꼬아 한 말이었다.

价川 가까이 농가에 들렸을 때는 嚴恒燮 등이 밤늦게까지 술을 마시고 떠드는 바람에 吳夏英이 『다들 아직도 젊어서 한창이로군.』하고 넌지시 타이르며 빨리 자기를 재촉하자 『그럼 우리가 늙었단 말이요? 인제부터 한참 일할 나인데.』하고 도리어 嚴恒燮이 대들었다.

이들 제 一진은 떠난 지 약 一주일만인 3월 10일쯤 平壤에서 약 二0리 떨어진 大同군 始族(舊柴足) 면 농가에 이르러 짐을 풀었다.

제 一진이 떠난 지 이틀 후 趙憲永, 元世勳, 丘德煥, 金長烈, 金義煥, 金憲株, 白象圭, 梁在廈등으로 구성된 제 二진도 곧 始族면에 도착 합류되었고 중병으로 시달리던 趙琓九, 吳正方, 張蓮松등 환자와 나머지 인사들은 훨씬 늦어 4월 10일경에야 이곳에 도착하여 우선 근처 농가에 머무르게 되었다.

- 계속-

訂正)) 15일자 본란에서 한국구세군사령관 「로드」가 사망하였다함은 당시 미국종교인 一명이 사망한 사실에 대한 필자의 착각이었으며 「로드」는 一九五三년 봄에 석방되어 독일경유 영국으로 간 것을 아울러 부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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