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납북인사 북한생활기 - 죽음의 세월 19회 1962. 4. 18
  이름 : 관리자 날짜 : 2005-10-05 16:46:28 조회 : 14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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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북인사 북한생활기 - 죽음의 歲月 19

1962년 4월 18일 동아일보


죽음의 歲月 19


납북인사 북한생활기


離間 붙여 動向內査
甲論乙駁 시끄러워流會된 自治會
利用度 따라 隔離收容


別午里 십여 리 밖 일대 농가에 수용되었던 金容鉉, 崔丙柱, 許永鎬, 具中會, 洪淳玉등 五십여명의 일반 국회의원들도 3월말 平壤으로 이동하기 시작하였다. 다만 와병중인 金禹植, 曺圭卨외 수명만은 그곳 농가에 남겨두었다.

달구지와 소를 징발, 식량과 된장들을 싣고 당간부 二명과 호위병 四, 五명과 함께 끌려 갈 때보다는 퍽 자유스러운 분위기로 楚山, 을 거쳐 江界로 빠졌다. 누비 솜옷에 광목 내의 , 양말이 없어 광목 발싸개로 발을 감쌌으나 江界에 도착했을 때는 모두 발병들이나 부득이 이틀동안 그곳에서 쉬었다.

价川을 거쳐 平壤 20리 밖 大同군 元里 농가에 여장을 풀었을 때는 떠난 지 보름 후였다. 그러나 도착하자마자 金長烈, 吳澤烈, 具中會, 李龜洙등 십여명은 갑자기 「스리코터」에 태워 협상파 및 저명납치인사들이 기거하고 있는 始族면 가까이로 이동하여 갔다. 그 이유는 지금까지의 심사결과 정치적 이용도가 높기 때문이었다.
나머지 인사들은 농가에 분산 기거하면서 규율적인 생활을 하였다.

며칠 후 이들 스스로 자치위원회를 조직하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이 문제를 주로 필요가 있느니 없느니 시비가 벌어졌으나 책임자의 압력으로 자치위원회를 조직하고 柳翼秀를 위원장으로 선출하였다. 그러나 이 자치위원회란 스스로의 생활 향상을 위한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의 소위 자기 비행을 털어놓게 하기 위한 수작이었다.

넓은 농가에 꽉 들어차서 당간부 입회에 첫 자치위원회가 열렸다. 柳翼秀가 강압에 못이겨 토의 안건을 내놓았다. 지목된 사람은 지금까지의 간단한 자서전을 소개하라는 것이다. 柳翼秀는 망설이던 끝에 첫 번째로 鄭光好를 지목하였다. 鄭光好는 불쾌한 나머지 『위원장부터 먼저 하시오.』하고 반박하자 대다수가 찬성을 연발하였다.

듣다 못한 당간부는 『남반부식인지는 모르지만 당신네들은 전연 회의하는 법을 모르고 있소. 위원장은 책임을 지고 있으므로 맨 나중에 하는 법이요.』하고 도대체 회의진행이 돼먹지 않았다고 말하였다. 이에 許永鎬가
『다 같은 처지에 있는 판에 회의법이니 뭐니 할게 아니라 다수결로 해나갑시다.』하는 바람에 또 모두 재청을 하였다.

화가 난 당간부는 『당신네들 남한에서처럼 국회를 열고 있는거요, 뭐요? 서로 감투다툼식 회합은 여기선 안되오.』하고 소리를 질렀으나 갑론을박하면 끝에 유회되고 말았다.

다음날 이런 공기를 알아채린 파견당 책임자는 한사람씩 불러내어 자기네들이 미리 마련한 회의진행방법에 순종하라고 지시하였다.

다시 회합이 시작되자 柳翼秀는 위원장자리를 사퇴하겠다고 제의하였다. 그러나 모두 반대하여 그대로 회의는 진행되었다. 맨 처음으로 宋昌植이 지목되었다. 宋昌植은 간단히 자기 약력을 소개하고 모두 다 아는터인데 쑥수럽다고 웃어버렸다. 입회하던 당간부가 나서서 『자기 이력보다도 자기의 죄행을 자백하는데 이 회의의 의의가 있는거요.』하고 다시 하라고 요하였다.

그러자 許永鎬가 참다못해 『우리가 죄가 있다면 국회의원한 죄밖에 없소. 이게 죄란 말이요?』하고 대드는 바람에 또 다시 회의는 유회되고 말았다. 이 때문에 許永鎬와 二, 三명의 인사가 안전부원(정치보위부)에게 종일 엄격한 심사를 당하였다.

부득이 당간부는 자치회는 단념하고 한사람씩 불러다 심사하기 시작하는 한편 혹 소동이라도 일으킬까 두려워 한집에 二, 三명씩 떨어져 있게 하였다. 그리고 식사 때만 깨진 종을 쳐 한곳에 모이게 하였다. 특히 이 당시는 전쟁중이라 극심한 식량난으로 하루 잡곡 八할에 쌀 二할, 도합 六백「그램」밖에 안되었다.

그리고 당간부와 안전부원들은 주야로 한집에 있는 인사들을 이간질을 붙여 불평분자를 내밀히 조사하고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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