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납북인사 북한생활기 - 죽음의 세월 33회 1962. 5. 7
  이름 : 사무국 날짜 : 2006-12-14 19:10:09 조회 : 1947  
  파일 :
납북인사 북한생활기 - 죽음의 歲月 33

이름 : 관리자 번호 : 64
게시일 : 2001/03/06 (화) AM 09:57:17 (수정 2001/03/07 (수) AM 09:28:32) 조회 : 19

1962년 5월 7일 동아일보에서


죽음의 歲月 33


납북인사 북한생활기


一部人士는 滿浦로
說得工作에 나선 「組統」 八人組
懷柔失敗하자 恐喝


52년 초부터 崔麟, 玄相允등 소위 반동저명납치인사들에 대한 적극적인 회유술책이 시작되었다. 제 一차로 崔麟을 방문한 것이 조통 간부와 천도교 청우당 간부 金炳濟였다. 金은 『우리 천도교는 순수한 민족주의를 표방하고있고 또 청우당원들이 이북에 굉장히 많습니다. 선생께서 저희들과 같이 협조해주신다면 조국통일을 위해 앞으로 청우당원들의 활동이 크리라 믿습니다.』하고 협조할 것을 간곡히 부탁하였다.

그러나 崔麟은 청우당을 팔고 나서는 金炳濟의 언동이 몹시 비위에 거슬렀기 때문에 『내가 본시 민족을 반역한 친일파라고 모두들 하고 있지 않소. 그러니 협조할 자격조차 없는 몸이 들어간들 뭐하겠소.』하고 한마디로 거절했다. 그러자 옆에 있던 祖統간부가 말을 이었다. 『그러시다면 조국통일에 대한 방송원고와 선생으로서의 의견을 좀 써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병들어 인제 앞이 얼마 남지 않은 몸이니 그냥 버려 두어 주시요.』하고 崔麟은 즉석에서 이도 거절하였다.

이해 여름에 홀연히 그때까지 보이지 않던 徐廷禧가 이곳으로 옮겨왔다. 그의 입을 통하여 지금까지 전연 몰랐던 커다란 비밀이 하나 탄로되었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저명 납치인사 수 십명이 중공군에 넘겨져 거기에서 심사를 받은 후 이미 수 명이 滿洲로 끌려갔다는 사실이었다.

徐廷禧의 말에 의하면 그는 滿浦에서 平壤으로 돌아오자 무슨 영문인지 중공군에 인계되어 順安에 있던 중공군 지휘부로 끌려갔다. 그리고 근처 농가에 수용되었다. 그 곳에는 이미 수 십명의 납치인사들이 기거하고 있었다. 그는 여기에서 그들 인사가 모두 과거 일제 시 滿洲국 고관으로 있었거나 滿洲에 주둔하고 있던 일본군 관계에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다음날부터 중공군 정치부에서 통역을 통해 심사를 받기 시작하였다. 그는 이곳에서 일제 시 「포랜드」총영사, 滿洲국 簡任二등관, 松岡일외상의 고문으로 있다 八·一五반민특위에 걸려 47년 괴뢰인민위원회 의무국장 李康國의 꾀임으로 월북하였으나 즉시 平壤형무소에 갇혀 있던 朴錫胤과 납치인사 중 李範益 등 거물급 수명이 심사를 거쳐 滿洲로 끌려갔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고 보니 중공군은 지금 와서 이들의 과거를 캐내어 죄를 들씌우려는 심산인 모양이었다.

徐廷禧는 다행히 심사결과 滿洲에 있을 때 관리직에는 있지 않았고 다만 關東군과 관계가 있던 친지가 있었다는 것이 밝혀져 석방되어 다시 납치인사들 쪽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徐가 돌아온 후부터 조통과 합작으로 趙素昻 등 八명으로 구성된 소위 핵심인사들이 개별적으로 이들 인사에 대하여 손을 뻗혀 오기 시작했다. 물론 당의 지시에 의한 것이지만 겉으로는 조통과 八명의 인사가 자발적으로 하는 것처럼 보이려 애썼다.

하루는 嚴恒燮, 金義煥이 玄相允을 찾아와 조국통일을 지지하는 대남방송 및 조국에 대한 개인적 의견을 써줄 것을 요청하였다. 그러나 玄相允은 이를 거절하고 몸도 아프니 崔麟과 힘께 어디 양로원에나 보내어 조용히 여생을 보내게 해달라고 부탁하였다. 元世勳과 盧鎰煥은 白寬洙, 孫晋泰를 찾아와 똑같은 수작을 부렸다.

그러나 이들 납치인사들의 답변은 그 누구나 하나같이 똑같았다. 모든 공작이 수포로 돌아가자 파견되었던 조통간부는 『당신네들이 조국통일에 협조 않는다면 앞으로 인민들의 증오의 대상이 될 것이요.』하고 화가 나서 가버렸다.

그 후부터 祖統간부와 중앙당 간부 사이에 이들에 대한 조치문제가 토의된 끝에 崔麟은 平南 齋川읍에서 멀리 떨어진 어느 양로원으로 옮겨졌다. 양노원이라곤 하지만 의료시설 하나 없는 무의무탁한 노인들이 모여 사는 형편없는 곳이었다. 망녕을 부리는 노인, 정신을 잃고 대소변을 그대로 누워보는 노인, 매일 같이 죽어 넘어가는 노인만도 수 명씩 되었다. 崔麟은 이러한 황량한 환경 속에서 침묵만을 벗삼으며 날을 보내었다.

한편 玄相允, 白寬洙는 順安목장에 배치되어 주로 蒙古에서 수입해온 양, 돼지를 기르는 일을 돌보았다. 그리고 孫晋泰는 생산협동조합 平北도지부 산하 新義州 어느 조합출판공장으로 보내져 교정일을 보게 되었고 나머지 인사들도 각 공장 기업소등에 노동자로 배치되었다.


-계속-
 
번호 제목 이름 작성일 조회
223  [동아일보]납북인사 북한생활기 - 죽음의 세월 36회 1962. 5.  사무국 2006-12-15 2109
222  [동아일보]납북인사 북한생활기 - 죽음의 세월 35회 1962. 5.  사무국 2006-12-15 1999
221  [동아일보]납북인사 북한생활기 - 죽음의 세월 34회 1962. 5.  사무국 2006-12-14 2139
220  [동아일보]납북인사 북한생활기 - 죽음의 세월 33회 1962. 5.  사무국 2006-12-14 1947
219  [동아일보]납북인사 북한생활기 - 죽음의 세월 32회 1962. 5.  사무국 2006-12-14 1980
218  [동아일보]납북인사 북한생활기 - 죽음의 세월 31회 1962. 5.  사무국 2006-12-14 1969
217  [동아일보]납북인사 북한생활기 - 죽음의 세월 30회 1962. 5.  사무국 2006-12-14 2063
216  [동아일보]납북인사 북한생활기 - 죽음의 세월 29회 1962. 4.  사무국 2006-12-14 1981
215  [동아일보]납북인사 북한생활기 - 죽음의 세월 28회 1962. 4.  사무국 2006-12-14 2019
214  [동아일보]납북인사 북한생활기 - 죽음의 세월 27회 1962. 4.  사무국 2006-12-14 2136
213  [동아일보]납북인사 북한생활기 - 죽음의 세월 26회 1962. 4.  사무국 2006-12-14 2167
212  [동아일보]납북인사 북한생활기 - 죽음의 세월 25회 1962. 4.  사무국 2006-12-14 2143
211  [동아일보]납북인사 북한생활기 - 죽음의 세월 24회 1962. 4.  사무국 2006-12-14 1988
210  [동아일보]납북인사 북한생활기 - 죽음의 세월 23회 1962. 4.  사무국 2006-12-14 1341
209  [동아일보]납북인사 북한생활기 - 죽음의 세월 22회 1962. 4.  사무국 2006-12-14 1328
208  [동아일보]납북인사 북한생활기 - 죽음의 세월 21회 1962. 4.  사무국 2006-12-02 1399
207  [동아일보]납북인사 북한생활기 - 죽음의 세월 20회 1962. 4.  관리자 2005-10-05 1376
206  [동아일보]납북인사 북한생활기 - 죽음의 세월 19회 1962. 4.  관리자 2005-10-05 1476
205  [동아일보]납북인사 북한생활기 - 죽음의 세월 18회 1962. 4.  관리자 2005-10-05 1336
204  [동아일보]납북인사 북한생활기 - 죽음의 세월 17회 1962. 4.  관리자 2005-10-05 1418
[1][2][3][4][5][6][7][8][9][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