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납북인사 북한생활기 - 죽음의 세월 21회 1962. 4. 20
  이름 : 사무국 날짜 : 2006-12-02 22:39:56 조회 : 13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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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북인사 북한생활기 - 죽음의 歲月 21

이름 : 관리자 번호 : 50
게시일 : 2001/02/13 (화) PM 01:58:33 (수정 2001/02/18 (일) AM 07:47:38) 조회 : 42

1962년 4월 20일 동아일보


죽음의 歲月 21


납북인사 북한생활기


다시 細密한 審査
文化界人士에 職場줘 利用하려고
一部는 强制勞役에 配置


종교계 저명납치인사들은 「발진티브스」로 모두 쇠약해졌기 때문에 5월 초순에야 滿浦를 떠났다. 그제 一진은 南宮赫, 朴相健, 吳澤寬, 張德魯, 李鍵, 朴炫明, 金有淵등 二십여명의 거장급이었다. 머리카락을 두더지에 뜯어 먹힌 호박 마냥 숭숭 빠지고 피골이 상접한 그 모습은 마치 해골과도 같았다. 뒤남긴 인사들은 떠나는 이들은 붙들고 눈물을 흘리며 놓지를 않았다.

어느 농가 마당에 모인 이들은 기도를 올리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경비원들은 호령호령하며 군용 「추럭」에 마구 끌어 올리려 하였다. 그러나 이들은 끝내 버티어 기도를 끝낸 다음에야 차에 올랐다.

江界를 거쳐 安州 가까이 어느 농가에서 하룻밤을 묵게 되었을 때 그 집 할머니는 『어디서 오는 길이냐』고 물으며 이들이 신자들인 것을 알게 되자 몇 마리 남지 않은 닭을 잡아 후대하였다. 그리고 이들이 기도를 올릴 때는 같이 따라 기도를 하였다. 할머니 말에 의하면 자기도 신자이며 지금은 숨어서 기도를 드린다는 것이었다. 물론 경비원의 눈을 피해서였다.

떠난지 一주일후 이들은 大同군 文聖里 근방에 도착, 그곳 농가에 정착하였다. 매일같이 이들 인사는 뒤남기고 온 동료들이 하루바삐 도착해 주기를 기다리며 기도를 올렸다. 그러나 아무리 기다려도 그들은 뒤따라오지 않았다. 기다리다 못해 경비원에게 소식을 물어도 그들은 『모른다』는 대답뿐…. 뒤담긴 인사들은 사실 平壤으로는 오지 않았다.

괴뢰들은 나머지 인사들을 각도단위로 할당하여 그곳도 民主同盟책임자 및 당간부와 상의하여 협동조합, 인쇄공장, 또는 개간 사업 등에 배치 강제 노동을 시켰다. 그들 중 奇圭福외 몇 명은 新義州 기독교 동맹으로 보내져 어느 인쇄소에 배치되었고 方薰, 元春道등은 慈江도(북괴들이 새로 만들었음) 목장에서 일하고 있었다.

한편 저명납치 문화인중 만포에서 중앙당 지시에 따라 딴 곳으로 배치된 金起林등 이외의 柳子厚, 金憶, 李白水, 金東煥, 金炯元등 수십 명은 滿浦에서 다시 심사결과 십여명만 당에서 데리고가서 딴 곳으로 배치시켰다. 그리고 나머지 인사들은 5월 초순 환자만을 「추럭」에 태워 보내고 그 외는 배낭에 배급받은 식료품을 걸머지고 도보로 떠나게 하였다. 이들에 대한 주민들의 송별은 참으로 극진하였다. 특히 金憶은 자기 때문에 이곳에서 추방당한 노처녀를 생각하며 떠나기를 슬퍼하였다.

도보로 떠난 인사들은 熙川, 順天을 거쳐 자동차편으로 먼저 도착한 환자들과 大同군 始族면 大同江이 굽이쳐 흐르는 강가 어느 농가에서 합류하였다. 그러나 곧 始族면을 중심으로 수 개로 구분되어 이곳 저곳으로 분산 당하였다.

괴뢰당에서는 될 수 있으면 문화계납치인사들을 직장에 배치시켜 이용하려는 심산이었기 때문에 세밀한 사상심사를 다시 하기 시작하였다. 柳子厚는 신장병이 대단하였고 그밖에도 수많은 인사가 몸이 약해져 누워있었으나 당간부들은 이들에 대해서도 임상심문을 하였다.

하루는 당에서 파견된 간부가 내려와서 金東煥, 金憶을 데리고 갔다. 같이 기거하던 인사들은 밤늦도록 기다렸으나 그들은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 수일 후 그들의 소식이 궁금하여 극도로 신경이 예민해진 나머지 인사들이 당간부에게 소식을 물으면 『좋은 직장에 배치되었겠지요. 아마 당신네들도 곧 배치될 거요.』하고 흐릿한 대답을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후 金憶과 金東煥의 소식은 감감하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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