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납북인사 북한생활기 - 죽음의 세월 29회 1962. 4. 30
  이름 : 사무국 날짜 : 2006-12-14 18:24:08 조회 : 19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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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북인사 북한생활기 - 죽음의 歲月 29

이름 : 관리자 번호 : 60
게시일 : 2001/02/28 (수) AM 11:00:46 (수정 2001/03/01 (목) PM 04:26:02) 조회 : 32

1962년 4월 30일 동아일보에서


죽음의 歲月 29


납북인사 북한생활기


數個月秘密連絡
綻露되자 한사람씩 分散收容
숨어있던 牧師들 活動


文聖里에 수용되어 있던 저명 종교납치인사 중 宋昌根, 宋台用등 몇 명의 중환자는 딴 방에 모여있었다. 이들이 물을 좀 달라면 경비원은 물을 끓이기가 귀찮아 냉수를 퍼다주곤 하였다.

51년 7월 드디어 宋昌根이 무슨 말을 하려 몹시 애쓰는 듯 입을 움직어리다가 숨이 졌다. 옆방의 동료들이 모두 방에서 뛰어가 보려했지만 경비원들이 강제로 방에 몰아넣고 얼씬 못하게 하였다. 宋昌根은 관도 없이 누더기에 싸여 근처 산에다 동네주민들이 묻어 버렸다.

동료의 죽음을 못보고 또 매장할 때 입석도 못한 동료들의 슬픔은 컸으나 극비밀리에 즐거운 소식이 하나 전해졌다. 하루는 이웃마을 사는 노파가 이들에게 쪽지를 전해주었다. 그 쪽지는 平壤에 숨어 있던 재북 종교인에게서 온 것이었다.

당시 이북에는 그때까지도 월남 못한 수많은 목사들이 숨어살고 있었다. 그들은 이 노파를 통하여 납치된 종교인들의 소식을 듣고 극비밀리에 그 노파를 통해 쪽지를 보냈다. 수개월간 서신이 오고갔다. 그리고 노파를 통하여 떡 고기등도 전달되었다. 물론 마음씨 좋은 경비원이 파수를 볼 때만 전해졌다.

그러던 어느 날 경비책임자가 납치인사들의 거처를 순시 감시하다가 남겨둔 엿과 떡을 발견하였다. 이모저모로 추궁한 끝에 쪽지를 전해준 노파의 존재가 알려졌다.

곧 노파에 대한 심문이 시작되었다. 처음 노파는 다만 동정심에서 그런 먹을 것을 갖다주었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당시 자기 먹기에도 어려운 터였으니 경비원들이 넘어갈리 만무였다. 경비원들은 그 배후를 추궁하는 한편 노파의 집을 샅샅이 뒤졌다.

이윽고 납치인사들에게 미처 전하지 못한 平壤으로부터의 쪽지가 발견되었다. 그 쪽지 끝에는 金仁俊, 朴相徹 두 목사의 이름이 적혀져 있었다. 노파도 하는 수없이 사실을 자백하였다. 곧 이 내막은 정치보위부에 보고되었다. 정치보위부에서는 마치 큰 전과나 올린 듯이 날뛰었다.

金仁俊, 朴相徹는 六·二五이후까지 이북에 남아 지하에서 종교운동을 맹렬히 하여왔기 때문에 그러지 않아도 괴뢰들이 백방으로 이들을 체포하려고 애써 오던 중이었다. 이들은 곧 체포되었다.

이어 이들과 연락을 해오던 李 鍵, 金有淵이 주모급 죄명을 쓰고 정치보위부에 의하여 어디론가 연행되어 간 후 이들에 대한 생사는 알 길이 없다. 물론 노파도 행방불명되어버렸다.

그 후부터 당간부나 경비원들이 이들 인사에게 어떠한 수작을 부려도 『우리는 십자가를 위하여 순사하겠다』는 일념 밑에 어떠한 일에도 모두 불응하였다.

며칠 후 기독교 동맹소속 목사가 이곳을 찾아왔다. 그는 몹시 타협조로 이들을 무마하려 들었다. 그러나 헛수고였다. 당에서는 곧 이러한 사태를 수습하기 위하여 비교적 자유를 보장해주는 한편 급식도 전보다 우대하였다.

그 반면 괴뢰들은 이들에 대한 전술을 바꿔 하나 하나 분산시키기 시작하였다. 괴뢰들은 밤중 모두 잠들었을 때 한사람씩 불러내어 어디론가 데리고 갔다. 극비리에 진행되기 때문에 동료들도 그 다음날이 되어서야 누가 없어졌다는 것을 알 정도였다. 맨 처음 이곳을 떠난 것은 朴炫明, 張德魯 등이었다.

그리고 최후로 이곳에 남은 것은 三십명중 십여명에 불과하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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