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납북인사 북한생활기 - 죽음의 세월 32회 1962. 5. 5
  이름 : 사무국 날짜 : 2006-12-14 18:56:06 조회 : 1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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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북인사 북한생활기 - 죽음의 歲月 32

이름 : 관리자 번호 : 63
게시일 : 2001/03/05 (월) AM 10:13:03 조회 : 21

1962년 5월 5일 동아일보에서


죽음의 세월 32


납북인사 북한 생활기


著名人士 包攝 工作
八名을 골라 各界代表로 內廷
南勞黨·北勞黨 勢力 다툼도


52년 3월에 접어들자 남로당과 북로당 간에 세력다툼이 일어나기 시작하였다. 남로당 계열은 북로당 계열이 거의 높은 지위를 차지하고 있는 데 대한 불만이 컸다.

당시, 중앙당조직부장으로 있던 裵鐵은 祖統을 통해 저명납치인사들에 대한 대우문제와 교양문제를 의론하는 한편 자신이 수시로 나와서 형식적이나마 인사를 차리고 가곤 하였다. 그리고 洪曾植, 李仁同 등을 대리로도 보내어 서로 얘기를 나누는 등 달래기도 하였다. 이것은 도시 남로당 계열에서 저명 납치인사들을 자기네 손아귀에 끌어 넣으려는 수작이었다.

어느 날 祖統에서 특별 교양 훈련을 받고 있던 金孝錫, 金憲植, 元世勳, 金義煥이 始族면으로 돌아왔다. 이들은 곧 趙素昻등 四명이 머물러 있는 이웃 농가에 기거하게 되었다.

祖統은 이들 八명의 인사들을 앞으로 각계 각층의 대표로 내세워 남한에 대한 정치적 공세와 대외방송을 시키는 한편 이들을 핵심체로 하여 저명납치인사들을 포섭하려는 심산이었다. 우선 四명의 거물급 중 趙素昻은 重慶臨政계통대표로, 嚴恒燮과 趙琬九는 해외파 韓獨黨 대표로 安在鴻은 국내파 대표로 내세웠고 다음 四명중 金義煥은 국내파 韓獨黨 대표로 金憲植은 社會黨 元世勳은 민족자주 동맹 金孝錫은 국민당 대표로서 내세웠다.

이밖에도 吳夏英등 중요한 납치 인사들이 있었지만 괴뢰는 우선이상 八명을 각계 대표로 선정하고 그들을 우대하였다.

하루는 이곳에 정치보위부에서 파견돼 있는 洪소좌의 권유로 약 二십여리 떨어진 西平壤시장에 구경을 가게 되었다. 당시만 해도 개인 상인들이 서울의 淸溪川 시장 마냥 꽉 들어차서 북적거리고 있었다. 「유엔」공군도 이곳에 대해서만은 폭격을 하지 않았다.

오랜만에 시장구경을 나선 이들 일행은 모아두었던 수당금으로 세탁한 헌 무명겹옷과 중공제 담배, 성냥 등을 산 다음 점심때가 되자 음식점에 들어가 밀도살 한 말고기, 소고기 등을 안주로 밀주를 사서 오랜만에 술판을 벌렸다. 신병으로 趙琓九가 한자리에 끼지 못한 것을 섭섭해 하였다.

거나하게 술이 취한 이들은 시간가는 줄도 몰랐다. 洪소좌는 『그만 가자』고 재촉하였으나 이들은 연상 술잔을 기울이며 술이 부족함을 탓할 뿐이었다. 하오 5시가 지나서야 이들은 음식점을 나섰다. 모두 술이 거나해 비틀거리기 때문에 이대로는 도저히 걸어갈 수 가 없어 지나가는 군용 「추럭」을 세우고 洪소좌가 사정사정 해봤으나 규칙위반이라고 허탕이었다.

그 때마다 趙素昻은 『젊은이, 너무 그럴 것 없지 않나. 滿浦까지도 굶고 걸었는데 술도 얼근하겠다 또 슬슬 걸어보세.』하고 은근히 洪소좌를 비꼬아대며 웃어대었다. 이들이 걸어서 始族면 거처까지 도착하였을 때는 밤도 깊어서였다.

趙琓九는 병석에 누운 채 그때까지도 잠들지 않고 이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모두 유쾌해하는 이들을 보자 趙琓九도 오랜만에 일어나 앉아 같이 담소하였다. 金義煥은 金憲植더러 좋은 사람이 기다리고 있을 테니 먼저 집으로 가보라고 농을 걸었다.

이 말에는 이유가 있었다. 金憲植등 四명이 머물러 있는 집에는 40세 남짓한 뚱뚱한 과부가 이들의 온갖 시중을 돌고 있었는데 그 과부와 金憲植이 좋아지낸다는 소문이 퍼진 때문이었다. 물론 金憲植은 이를 극구 부인하였으나 농담의 화살은 그를 떠나지 않았다. 이리하여 이 날밤 이들 八명은 밤이 깊도록 이야기의 꽃을 피우다가 늦게야 집에 돌아왔다.

이들 八명이 이처럼 한자리에 모여 화기애애하게 지낸 것은 이것이 처음이다. 이것도 실은 괴뢰당이 사전에 꾸민 하나의 공작이었다. 괴뢰들은 이들 八명이 핵심체가 되게끔 서로 친밀히 어울리기를 원했던 것이다.

이 때부터 이들을 중심으로 개별적으로 저명 납치인사에 대한 인간적 또는 사상적 포섭공작이 꾸며지기 시작하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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