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납북인사 북한생활기 - 죽음의 세월 37회 1962. 5. 14
  이름 : 사무국 날짜 : 2006-12-18 12:12:47 조회 : 2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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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북인사 북한생활기 - 죽음의 歲月 37

이름 : 관리자 번호 : 68
게시일 : 2001/03/10 (토) AM 11:10:25 조회 : 17

1962년 5월 14일 동아일보에서


죽음의 歲月 37


납북인사 북한생활기


元里에 남아있던 許永鎬 등
四십여명의 일반국회의원들은
그 후 어떠한 대우를 받았을까?

이들 인사처럼 온갖 노동에 시달리며 고생한 사람은 없었다. 병들어 누운 金永東등 십여명은 四, 五개월후 자리에서 일어나기는 하였으나 영양실조로 불성모양이었다. 한편 건강한 인사들은 매일같이 동원되어 시족면 일대에 굴과 방공호 파기에 종사하였고 농사일에까지 끌려다녔다.

그러나 그것은 약과였다. 53년 7월 휴전이 성립되자 남노당간부에 대한 피의숙청이 단행되고 살벌한 분위기가 감도는 가운데 이들은 두패로 나뉘어 한패는 南平壤 堂山里에 다른 한패는 東平壤 栗洞 二里에 분산수용되었다. 이들은 이때부터 중노동에 시달리게 되었다. 소위 전후인민경제 복구계획이라 하여 平壤시는 남녀노소가 모두 동원되고 있었다. 이들도 이판에 휩쓸려 들어갔다.

堂山里에 있던 鄭光好 등 二십여명은 시내의 파괴된 고층건물 정지작업에 동원되고 栗洞에 있던 崔丙柱 등 二십여명은 상하수도 굴착작업에 배당되었다. 이들은 새벽부터 잡곡도시락을 내 차고 작업장으로 나서야했다.

8월의 찌는듯한 햇볕아래 윗통을 벗어제치고 이들은 곡괭이를 휘둘러야했고 목도를 메어야 했다. 괴뢰작업반장들은 붉은기와 『한사람같이 복구계획에 동원되자!』라는 「프래카드」를 사방에 꽂아놓고 땅에 선을 그어 각자 하루의 노동완수량을 정해놓고 해놓기 때문에 자기 책임을 완수하느라고 이들 인사는 잠시라도 쉬어볼 길조차 없었다. 손은 불풀어 터져 피가 흐르고 어깨는 목도를 메느라 까져서 쓰라렸다.

가끔 당과 정부 고위관리들이 소련제 「짚」차를 타고 위풍 당당히 순회시찰을 하는 것이었다. 생전 이러한 노동에 시달려보지 못한 金景道와 崔錫洪은 지처 그만 곡괭이로 자기발을 찍고 말았다. 그러자 괴뢰작업반장은
『여기가 어딘줄 알고 태공(怠工)을 할라는 거요!』하고 소리를 지르며 노동을 안하려고 일부러 발을 찍었다고 치료도 않고 더 혹독하게 노동을 시켰다.

근 一년을 이렇게 전전하며 중노동을 하던 끝에 組統과 趙素昻 등 八인조 납치인사들의 도움을 얻어 간신히 중노동은 면하게 되었다.

54년 8월 드디어 鄭光好, 崔錫洪, 趙玉鉉, 金禹植, 曺圭卨, 宋昌植은 黃海도 殷栗과수원 분농장에 작업반으로 배치되고 許永鎬, 鄭仁植, 崔丙柱, 辛容勳, 金景道, 趙炳漢등은 黃海도 「세도」 농장 농사작업반에, 그리고 나머지 金永東, 李康雨등 십여명은 **과수농장 작업반에 잠정적으로 배치되었다.

이렇게 중노동에서 해방하여 농장등으로 보낸 것은 그실은 앞으로 성립될 재북평화통일촉진협의회에서 다소나마 정치적으로 이용하기 위한 수작이었다.

이들 인사들은 배치된 각 농장에서 일하면서 그곳 책임자들의 알선으로 한 두 사람 가정도 이루게도 되었다. 그것은 합숙생활에 너무도 지쳤고 또 고향생각과 가족생각을 없애기 위한 하나의 그네들의 술책이었다.

그 제 一착으로 늙은 과부를 만나 방한 칸이라도 빌려 따뜻한 된장국이라도 얻어먹을 수 있었던 것이 「제도」농장에 배치된 崔丙柱였다. 이와는 좋은 대조로 辛容勳은 미처 모르고 무식한데다 성격이 고약한 과부와 임시살림을 꾸몄다가 음식솜씨마저 형편없어 오히려 되게 골탕을 먹었으나 안 살려고 해도 여자 편에서 통 물러나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 당시 이들에게 지급된 노임은 월당 一천 五백환 내외, 일당양식배급량은 잡곡 六십%를 섞어 모두 七백「그람」, 一년에 광목 십二「미터」에서 십五「미터」, 양말 두 켜레, 비누 두 장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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