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납북인사 북한생활기 - 죽음의 세월 39회 1962. 5. 17
  이름 : 사무국 날짜 : 2006-12-18 12:38:04 조회 : 23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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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북인사 북한생활기 - 죽음의 歲月 39

이름 : 관리자 번호 : 70
게시일 : 2001/03/13 (화) AM 09:50:40 조회 : 25

1962년 5월 17일 동아일보에서


죽음의 歲月 39


납북인사 북한생활기


「反動」은 파리목숨
이름갈고 經歷 숨겨 潛伏生活
牧丹峰 비탈에 絞首臺


무명납치인사 - 이들은 표현 그대로 이름조차 없었기 때문에 길가에 흩어진 돌덩어리처럼 마구 짓밟혀 억울한 죄명아래 죽어갔다. 그러나 처신에 유리할 때도 있기는 하였다.

江界까지 끌려간 후 괴뢰들이 혼란에 빠져 허둥지둥 질서를 못 잡고 있을 때 도망도 칠 수 있었고 이름과 경력을 속여 적당한 공장, 기업소등에 들어가서 경노동을 하며 지낼 수 도 있었다. 개중에는 이름 있는 사람도 자기 이름과 신분을 속이고 무명인사로 공장에 숨어 일하는 예도 있었다.

그러나 그도 오래가지는 못하였다. 남노계 간부의 숙청과 때를 같이 하여 말단직장에 이르기까지 남한출신자에 대한 과거 경력을 다각도로 조사, 적발하기 시작했기 때문…. 신분과 경력을 속인 수많은 인사들이 탄로 적발되었다.

여기에 그 좋은 예로는 五四년 3월 平壤시내 무너진 건물들의 벽마다 먹으로 갈겨쓴 「비라」가 수없이 나붙었다. 「인민재판」이란 커다란 글씨 밑에 - 때 3월 7일 하오 1시, 장소는 牧丹峰광장, 죄명은 「반동」, 다섯 명의 이름이 굵직하게 적혀있었다. 平壤시민들은 이 「비라」앞에 모여 서서 불안한 표정으로 웅성거렸다.

이윽고 7일 하오 牧丹峰 비탈진 조그만 광장에는 통·반에서 동원된 수많은 시민들과 호기심에 끌려 모여든 사람들로 주위 산턱까지 하얗게 덮였다. 이미 산턱에는 심판대가 마련돼 있었고 얼마 떨어진 곳에는 「ㄷ」자를 세운 「ㄷ」형으로 교수대가 살풍경을 이루었다.

12시 40분쯤 수갑을 차고 또 결박당한 소위 「죄수」 五명이 「스리쿼터」에 실려 군중을 헤치며 광장 안에 나타났다. 뒤이어 「레닌·모」에 투명 청색인민복을 입은 심판관들이 심판석에 늘어앉았다. 얼굴이 거무틱틱하고 하나같이 무식한 티가 풍겼다.

그 중에는 여자도 한 명 끼어있었고 소위 관선변호사도 있었다. 곧 검사의 논고가 시작되었다. 『이네들은 남반부에서 미제 앞잡이로 수많은 애국지사를 살해하고 심지어는 이름과 신분을 가장하고 신성한 공화국기업체에 침투하여 파괴활동을 꾀하다 탄로된 흉악범들이요.』하고 상투적으로 날조한 죄상을 한시간 남짓 낭독한 다음 「공화국형법」제 六一, 六二조에 해당한다고 사형을 구형하였다.

주위 일대에는 「스피카」를 임시 가설했기 때문에 그 내용은 누구나 들을 수 있었다. 뒤이어 각 피고에 대한 판사의 심문이 시작되었다.

맨 처음으로 심문을 받은 사람은 洪光燮 - 그는 사변전 開城 형무소 간부로 있다가 납치된 후 과거 신분을 속이고 공장에서 일하고 있었다. 다음은 「유엔」군으로 북진하였다가 낙오한 李春乾이었다. 그리고 제일 곤란한 것은 납치된 후 이름과 신분을 속이고 滿浦에서 平壤으로 돌아와 전기공장에서 일하고 있던 법조계 출신 泰寅根이와 그밖에 죄명이 뚜렷치 않은 두 명이었다.

판사의 심문이 끝난 후 일단 폐정하였다가 三십분만에 다시 개정되었다. 재판장이 불쑥 일어나 군중을 향해서 『여러분들은 지금 이 五명의 피고에 대한 죄상을 들었을 거요. 나는 재판장으로서 현명한 여러분의 의사를 따르려하오. 그럼 이들 五명의 피고에 대해 무슨 형을 내리면 좋겠소?』하고 한 명씩 피고의 이름을 부르고 묻기 시작했다.

그때마다 이곳 저곳에서 『사형에 처하라!』『옳소!』하는 소리가 연발하였다. 사전에 군중속에 끼어있던 「뿌락찌」들에 의한 조작인 것은 물론이다. 거의 군중의 태반은 안타깝게 바라보기만 하였다. 이윽고 재판장은 소위 인민의 의사에 따라 三명에 사형, 二명에 무기징역을 언도하였다.

형식적인 최후진술이 허용되었을 때 洪光燮은 『나는 사변 때 붙들려 와서 인민군에 편입되었다가 제대한 후 노동직장에서 일한 것밖에 없습니다. 사형이라니 억울합니다.』라고 말하였다. 그러나 곧 洪光燮, 李春乾외 一명에 대한 사형이 집행되었다. 이들은 결박을 당한 채 교수대의 이슬로 사라졌다. 시체는 그대로 교수대에 매어 달린 채 이들간 놔두었는데 平壤시민들에게 『반동을 하면 이렇게 된다.』는 공포의 경고를 주기 위한 것이었다.

그 후에도 괴뢰들은 신분을 속인 수많은 무명납치 인사들을 「인민재판」이란 이름 밑에 교수형에 처하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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