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납북인사 북한생활기 - 죽음의 세월 45회 1962. 5. 24
  이름 : 사무국 날짜 : 2011-06-06 18:44:15 조회 :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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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북인사 북한생활기 - 죽음의 歲月 45

이름 : 관리자 번호 : 80
게시일 : 2001/03/21 (수) AM 10:10:52 (수정 2001/03/21 (수) AM 11:14:21) 조회 : 34

1962년 5월 24일 동아일보


죽음의 歲月 45


납북인사 북한생활기


온갖 奸計부려 宣傳
「平和統一促進協」結成되자 待遇는 判異
죽음 直前까지도 利用

「소위재북평화통일촉진협의회」가 결성되고 나서부터 저명납치인사들에 대한 대우는 판이해졌다. 승용차도 또 한 대 새로이 보내어왔다.
최고위원은 중앙공급 특급대우로 양복, 구두 등이 배급되었다. 이것은 장관급대우였다. 월급도 당시화폐로 一만환, 차관급봉급이었다. 상무위원은 一급대우로 차관급배급, 월 六천환의 봉급이었고 집행위원은 二급, 三급의 대우를 받았다.
그들은 이들 인사를 정치적으로 이용하기 위하여 상당한 대우를 아끼지 않았었다.
그리고 심지어 병들어 죽어 가는 사람들까지 대남 방송으로 정치적 이용을 했었다.
56년 10월쯤이었다. 「재북평화통일촉진협의회」발기인의 한사람인 張連松이 병으로 앓아 눕게 되었다. 괴뢰들은 곧 괴뢰고급관리만이 입원할 수 있는 정부병원 二층 三호 특등실에 입원가료케했다.
병은 점점 악화되었다. 고명한 의사들이 동원되어 엄밀하게 진찰을 거듭한 결과 폐암으로 불치의 병이라는 것이 확인되었다.
張連松은 침대에 반듯이 누운 채 거의 혼수상태에 빠져 매일같이 부인과 자식들의 이름만 부르며
『여기가 어디냐? 내집이 아니란 말이냐?』
하고 헛소리를 쳤다.
불치의 병으로 생명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소식과 가족이름을 자꾸 부르며 헛소리를 한다는 얘기가 중앙당에 보고되었다.
중앙당과 祖統은 곧 이를 유일한 기회로 대남선전을 위한 간계를 짜내기 시작하였다.
다음날 밤부터 대남방송이 거듭되었다.
『북한에 와있는 張連松이 병환으로 지금 죽음직전을 헤매고 있다. 우리는 그를 정부병원 특실에 입원시키고 있는 힘을 다하여 극진히 간호하고 있는 중이다.
그는 죽음을 눈앞에 놓고는 매일같이 부인과 가족의 이름을 부르며 혼수상태에 빠져있다.
우리는 남한에 있는 가족에게 그의 임종을 인도적인 입장에서 입회할수있도록 아량을 베풀어줄 용의를 갖고 있다. 남한정부가 만일 그가족을 입북시킬 마음이 있다면 그 장소와 일자를 밝히겠다. 그의 임종을 보게하기 위하여 남한정부는 그 가족을 보낼 용의는 없는가?』
하고 板門店 모장소와 그일시를 대대적으로 선전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張連松에게도 이 방송 사실을 알리고 마치 자기네가 얼마나 인도적인 입장에서 애를 쓰고 있는가 생색을 부렸다. 一석 二조의 효과를 얻자는 간계임은 말할 것 없다.
張連松은 그들이 문병을 올때마다
『아직도 소식이 없느냐? 내 가족이 오겠다는 소식이…?』하고 그들의 간교한 수단인줄은 알면서도 애태웠다.
『아직도 소식이 없소. 우리의 성의에 비하여 남한위정자들은 너무도 성의가 없소. 그러나 우리는 낙심 않고 계속 방송을 통하여 노력하는 중이요.』
하고 찾아온 祖統간부는 남한에 대한 비난을 퍼부었다.
어쩌면 다 죽어가는 사람을 이처럼 자기네들의 정치적 선전을 위하여 기만하고 더욱 애태우게 할 수있을까? 간호원들마저 너무도 무자비한 그들의 수책에 눈살을 찌푸렸다.
10월 하순 드디어 張連松은 숨을 거두었다.
납치인사들에 의한 장위위원회가 조직되고 각처에서 보내진 수십개의 화환에 둘러싸여 성대히 장례식이 거행되었다. 괴뢰들은 일부러 이렇게 성대히 꾸민 것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다시 이 사망을 계기로 대대적인 대남 선전을 거듭 되풀이하였다
그 내용이 어떠한 것이었는가는 가히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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