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납북인사 북한생활기 - 죽음의 세월 50회 1962. 5. 30
  이름 : 사무국 날짜 : 2011-06-06 19:10:55 조회 :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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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북인사 북한생활기 - 죽음의 歲月 50

이름 : 운영자 번호 : 100
게시일 : 2001/04/07 (토) AM 10:26:33 조회 : 35

1962년 5월 30일 동아일보에서


죽음의 歲月 50


납북인사 북한생활기


로봇트 生活도 短命
肅淸의 前奏...「中共軍慰安講演」計劃꾸며
國會뿌락지 關聯人士도 流配의 몸이되고


58년은 납치인사들에게 수난의 첫해였다.
6월 어느 날 「祖統」간부와 중앙당부위원장 朴金喆의 입회 하에 소위 『재북평화통일촉진협의회』상무위원회가 열렸다. 상무위원으로는 趙素昻, 吳夏英, 安在鴻, 金若水, 金孝錫, 宋虎聲, 嚴恒燮, 尹琦燮, 崔東 , 黃 鎬, 元世勳 십一명이었다.
중공군 철수를 앞두고 이런 회의를 연 이유가 金若水, 金孝錫의 적극적인 발언을 통하여 곧 밝혀졌다.
철수하는 중공군 각 부대를 찾아가 소위 노고에 대한 감사와 남한실정을 폭로하는 강연회를 비롯하여 각도단위 및 군단위로 소위 『조국의 평화적 통일』에 대한 강연행각을 하자는 것이었다. 이러한 발언이 사전에 중앙당의 지시에 의한 것임을 물론이다.
趙素昻은 침묵만 지켰다. 회의가 끝나고 집에 돌아가서는 강연준비도 않고 들어박혀 있었다.
출발이 임박하자 갑자기 사정에 의하여 몇 사람만은 중공군위안강연을 중지하게 되었다고 전해 왔다. 趙素昻도 그 속에 끼인 한사람이다.
이미 모든 내막을 알아차린 그는 소위평화통일을 위한 각지방단위 강연회도 이 다음 기회 미뤄주었으면 좋겠다고 거절하였다.
이처럼 갑자기 소위 重慶파 몇 사람만 강연을 중지시키게 된 것을 중공군이 싫어하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과거 중국 망명시 韓獨黨계 인물이 蔣介石총통의 원조 밑에 임시정부를 이루고 있었고 그래서 중공군은 당시부터 이미 속으로 적대시하고 있었기 때문에 중공의 정치적 군사적 압력을 받고있는 괴뢰들로서는 어찌 할 수 없었다.
이후부터 소위 重慶파들은 상무위원회나 집행위원회가 있을 때에도 전연 발언권을 얻지 못했다. 그러나 이러한 「로봇드」생활도 오래가지는 못했다.
중앙당은 곧 「인민경제대학」과정을 수료하고 돌아온 明濟世, 梁在廈, 朴烈을 새로 신임하게 되어 尹琦燮으로부터 상무위원이란 감투를 뺏어 그들에게 씌워주었다. 趙素昻만은 다만 면목상 유임시키긴 하였으나 발언권을 전연 주지 않았다.
10월말 임시상무위원회가 열렸을 때였다.
趙素昻은 고혈압으로 병중에 있기 때문에 참석치 않았다. 그러지 않아도 괴뢰들은 상무위원으로 단하나 남아있는 宋虎聲도 부르지 않았다. 이 회의석상에서 당간부는
『과거 해외에서 망명 중이던 노인네들은 혁명운동은커녕 늘 자리다툼만 했던 것이 사실이요. 특히 重慶에 망명했던 노인네들은 중국국민당의 남의사(藍衣社) 원 노릇들을 하였소. 즉 蔣介石의 정보기관원 노릇을 하며 우리 공산주의자들을 박해한 사람이 많았던거요. 그러기에 우리는 국내 또는 일본에서 반일투쟁을 해오던 여러분을 더욱 신임하는 바이요.』하고 그들을 떠받드는 것같이 말하였다.
이것은 곧 趙素昻일파에 대한 숙청 기틀이 다 마련되어 있다는 말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그때까지 그처럼 신임을 두텁게 한 몸에 지녔던 국회「뿌락지」사건의 金若水등의 운명은 과연 어떻게 되었던가?
국회 「뿌락지」중의 한사람이었던 崔泰奎는 벌써 58년에 영웅주의적 성품의 소유자란 낙인이 찍혀 黃海도 遂安광산으로 추방되어 강제 노동을 하였고 뒤이어 역시 「뿌락지」의 한사람인 金庚培도 사상이 불온하다고 平壤에서 쫓겨나 大同군 농업협동조합 일개 농군으로 유배되고 말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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