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납북인사 북한생활기 - 죽음의 세월 43회 1962. 5. 22
  이름 : 사무국 날짜 : 2006-12-18 18:21:24 조회 : 25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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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북인사 북한생활기 - 죽음의 歲月 43

이름 : 관리자 번호 : 77
게시일 : 2001/03/19 (월) AM 10:09:56 조회 : 28

1962년 5월 22일 동아일보에서


죽음의 歲月 43


납북인사 북한생활기


낡은 乘用車로 생색
平和統一促進協議會 엉터리로 演出
自己도 모르게 「著名한이름」盜用


각계각층대표를 망라한다는 점에서 고의적으로 작성하여 마치 자발적인 것처럼 만든 소위 『재북평화통일촉진협의회』의 발기 인명단에는 韓獨黨, 民族自主聯盟, 大韓勞農當, 大韓勞總, 民主國民黨, 社會黨, 民族共和黨, 建國靑年會, 무소속, 종교계, 대한부인회 대표 등이 총망라되어있었다.

다만 납치인사들중 저명한 학자나 기술자들은 자발적으로 입북한 것처럼 가장하기 위하여 발기인명단에서 일부러 빼었고 법조계, 문화계 저명인사들은 정치적으로 이용가치가 없는 반동으로 지목했기 때문에 제외되었다.
趙素昻, 吳夏英, 安在鴻, 尹琦燮, 宋虎聲, 金若水, 嚴恒燮, 姜旭中, 金孝錫, 金義煥, 金憲植, 金沃周, 丘德煥, 權泰羲, 盧鎰煥, 李文源, 明濟世, 朴承浩, 朴寶廉, 朴烈, 吳正方, 趙憲永, 張連松, 元世勳 등등 四십八명의 발기인이 발표되었으나 대개가 자신도 모르게 그 이름이 기재되었다. 이처럼 발기인 명단이 내정되자 자기도 모르게 그 속에 이름이 끼어 있는 것을 보고 놀라는 인사들이 많았다. 趙素昻과 安在鴻은 祖統간부에게 왜 명단에 넣었느냐고 불평과 함께 따지기까지 하였다.

어쨌든 吳夏英, 安在鴻, 趙素昻, 嚴恒燮, 宋虎聲, 金若水, 李文源 등은 四십八명을 대표하여 祖統간부와 강령규약을 기초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 당시 金日成을 반대하던 延安派에서는 극력 이조직결성을 반대하고 나섰다.

延安派 괴수 崔昌益은 『이들 봉건적 민족주의자들을 끌어다 무슨 필요가 있느냐?』고 공격의 화살을 퍼부어 논난이 벌어졌다. 그러나 金日成일파는 이를 그대로 추진하였다. 그것은 4월에 열릴 예정인 괴뢰당 三차 당대회에서 각국 공산당대표를 초빙한 가운데 남한에 대하여 정치조직을 통한 선전공세를 취할 것을 결정하는 조항이 들어있었기 때문이었다.

우선 괴뢰들은 이를 추진하기 위한 사무실로서 西平壤 箕林동에 있는 조그만 건물을 하나 마련하였다. 여기에서 매일같이 祖統의장인 鄭魯湜등이 모여 구수회의를 하였다. 회의는 6월까지 계속되었다.

趙素昻과 安在鴻은 전연 적극성을 보이지 않는 가운데 강령 규약은 작성되어 중앙당에 올라갔다. 그러나 이것은 곧 괴뢰당 조직부장 朴圭喆의 비위를 되게 거슬렸다. 결국 중앙당에서 대폭 수정하여 새로 만들다시피 하여 내려보냈다.

이윽고 창립총회 날짜가 결정되었다. 7월 3일 하오 1시 牡丹봉 극장에서 대회가 열렸다.

대회에 앞서 趙素昻과 安在鴻은 洪增植을 통하여 될 수 있는 한 각계각층의 납북인사들을 총회에 전부 참석케 하는 동시에 이들 인사에 대한 생활보장을 해줄 것을 넌지시 괴뢰당에 청해보았으나 『고려하겠다』는 한마디로 일축되고 말았다.

6월말 형식적이나마 거물급 납치인사들을 대우하는 의미에서 승용차 두 대를 보내왔다. 한 대는 낡은 「포드」「세단」차였다. 또 하나는 소련제 「뽀베다」라는 중고품 「세단」이었다. 그중 한 대는 趙素昻, 吳夏英, 安在鴻 三명이 전용으로 쓰게 되었고 나머지는 그 외간부들이 쓰게 되었다.

우선 대회에 앞서 부서가 결정되었다. 총무, 조직, 선전 三부로 나누었는데 총무부장은 당에서 파견된 南相元이 맡고 선전부장은 盧鎰煥, 조직부장은 당분간 임시로 洪增植이 맡아보게 되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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