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납북인사 북한생활기 - 죽음의 세월 55회 1962. 6. 12
  이름 : 사무국 날짜 : 2011-06-06 19:23:50 조회 :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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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북인사 북한생활기 - 죽음의 歲月 55

이름 : 운영자 번호 : 107
게시일 : 2001/04/13 (금) AM 10:05:31 (수정 2001/04/13 (금) AM 10:07:22) 조회 : 47

1962년 6월 12일 동아일보에서


죽음의 歲月 55


납북인사 북한생활기


勞動者까지 肅淸
咸興肥料工場에서 機械부수려는 陰謀
끝없는 連累者 索出


납북되어간 무명납치인사들은 그 후 어떻게 되었을까? 이들 역시 저명납치인사들이 이용당한 끝에 숙청된 것과 꼭 같은 길을 더듬어야 하였다.
57년도까지 그래도 이들은 비교적 직장들을 마련해 가지고 적당히 살아갈 수 있었다. 당시 북한에 있던 「인테리」들은 모두 남하하였기 때문에 괴뢰들은 극심한 교원부족에 허덕이고 있었다. 이런 관계로 납북된 무명인사들은 교편을 잡고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러나 延安파 숙청과 때를 같이하여 이들 무명인사에 대하여도 그 정체를 알기 위하여 대대적인 사상검토가 시작되었다.
당시 平壤 제 三중학에 대하여 두 달에 걸친 교원들의 사상검토가 있을 때였다. 그곳 교원으로 있던 李春根이 자기 경력을 속였다는 것이 탄로되었다.
그는 平壤이 원래 고향이었다. 그러나 해방 후 월남하여 남한에서 학업을 마치고 직장에 있다 납북되었다. 그는 滿浦에서 혼란한 틈을 타 도망쳐서 그때까지 平壤에 남아있던 가족한테 돌아와서 월남했던 사실을 전부 속이고 교원으로 들어갔었다. 그러나 이 사실은 동료 교원에 의하여 고발되었다.
그는 극친한 동료교원에게 자기의 과거를 말한 것이 도시 잘못이었다. 뿐만 아니라 고발한 동료는 李春根이 항상 金日成을 욕하는 한편 남한의 대북방송을 듣고 있다는 것까지 폭로하였다.
李春根은 약 한달 동안 심한 심문에 시달리던 끝에 반국가 죄로 투옥되었다.
또한 서울방송국에서 일하다 납치되어간 尹駿燮은 자진 월북한 것처럼 가장하고 東平壤견방직공장 업무부원으로 승격, 그곳 여직원과 결혼하여 단란한 가정을 꾸미고있었다.
그러나 운이 나빠 창고에 원인 모를 불이 일어났다. 곧 업무부원전원과 숙직자에 대한 심사가 시작되었다. 그런데 이와 때를 같이하여 咸興비료공장에서 또 큰 사건이 벌어졌다.
즉 四·五명의 비당원이 기계를 파괴하려던 음모가 발각된 것이다. 그중에는 납북되어 그곳에서 노동하던 安鐘煥이란 사람도 끼어있었다. 그는 납북될 때 尹駿燮과 같은 대열에 끼어있었고 또 이북에서도 줄곧 같이 행동을 하다 헤어진 사이였다.
가택수색 때 尹駿燮이 그에게 보낸 편지내용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혹시 음모사건과 관련되지 않았나 하여 尹駿燮에 대한 내막을 캐기 시작하였다. 그 결과 자진 월북했다던 尹駿燮이 납북되어왔다는 사실이 발각되었다. 결국 그는 체포되어 십년 징역형을 받고 감옥에 갇혔다.
그 후 咸興비료 공장기계파괴음모사건은 더욱 확대되어 수십 명이 체포되어 그 사건에 연좌된 사람들은 어디론지 끌려가 버렸다.
무명납치인사중 숙청대상은 교원이나 사무원에 그치지 않았다. 심지어는 말단 노동자들에게까지도 숙청선풍이 불었다.
平壤중앙식당에서 물구루마를 꿀던 權泰淳도 그 화를 입어야 했다. 그는 원래 입이 무거워 말 한마디 없이 소와 같이 일만하고 있었다.
어느 날 내무서원 3명이 와서 무조건 그를 연행하여갔다. 남한에서 경찰관 노릇을 했다는 것이 탄로되었기 때문이었다.
이처럼 괴뢰들은 납북된 무명인사들중 그들의 과거나 신분이 밝혀질 때마다 체포하여 투옥 또는 강제 노동수용소로 끌고가는 것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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