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납북인사 북한생활기 - 죽음의 세월 54회 1962. 6. 11
  이름 : 사무국 날짜 : 2011-06-06 19:22:30 조회 :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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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북인사 북한생활기 - 죽음의 歲月 54

이름 : 운영자 번호 : 105
게시일 : 2001/04/12 (목) AM 10:37:15 조회 : 56

1962년 6월 11일 동아일보


죽음의 歲月 54


납북인사 북한생활기


批判받으면 「딱지」
基督中央委論爭 바람에 숨은 信者橫厄
肅淸範圍 자꾸 擴大


일반 국회의원 중 張炳晩과 金禹植은 고령인 데다 신병으로 平壤 30리 밖 龍崗약수리 양로원에 비교적 편히 수용되어있었다.
그러나 具中會 許永鎬 金用鉉과 함께 平壤 급양관리소에 배치되어있던 洪淳玉은 58년 6얼 아무런 죄도 없는데 30여 만원의 국가재산을 손실했다는 혐의로 寺洞탄광에 무상노동자로 쫓겨났다. 이에 뒤이어 許永鎬도 경리감사결과 배급양곡을 사취하였다 하여 적발되었다.
당시 배급식량표를 취급하고 있던 그의 집에는 동서생활을 하고있던 여자의 친척이 한사람 묵고 있었는데 수개월동안 정식 수속 없이 양곡배급을 했던 것이었다. 이로 인하여 그는 3개월 배급양곡의 二배돈을 배상하는 동시에 현직에서 쫓겨나 농업협동조합 작업원으로 유배되었다.
비단 괴뢰들의 납치 인사에 대한 숙청은 여기에서만 그치지 않았다. 소위 정치적으로 이용하기 위해 조직시켰던 『재북평화통일촉진협의회』발기인 四십八명에까지 손을 뻗치기 시작하였다.
그 중의 한사람이 李萬植이었다. 그때가지 그는 소비조합중앙위원회 수매부 부책임자로 있으며 중앙공급 3급의 대우까지 받고있었다.
그러나 平安 남·북도의 소채 등 수매사업이 부진했다고 비판을 받은데다 집에 놀러온 민청맹원에게 金日成에 대한 불평을 늘어 논 것이 상부에 보고되어 책임을 추궁 당한 끝에 江原도 개간사업장으로 끌려가 중노동을 하는 신세가 되었다.
특히 납치된 종교인중 괴뢰기독교 동맹에 가입했던 權泰羲는 기독중앙위원회 회의석상에서 康良煜과 신자들의 집회장소와 성경책문제로 논쟁이 벌어진 적이 있었다.
즉 平壤에서 숨어서 기독교를 믿는 사람들이 많으니 이들을 포섭하는 동시 새로 성경책을 출판하여 헌것과 바꿔주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康良煜은 그러한 신자가 平壤에 한사람도 있을 수 없다고 주장 그 증거를 대라고 공박하였다. 그리고 만약 그 증거를 못 댈 경우는 없는 사실을 허위 날조했으므로 마땅히 그 책임을 져야한다는 것이었다.
부득이 權泰羲는 자기가 알고있는 그러한 신자들을 낱낱이 들었다. 이 당시만 해도 몰래 숨어서 기독교를 믿고있는 신자들의 수가 많았다.
이일이 있은 그 날로 平壤에 숨어있던 신자들이 속속 체포되고 權泰羲도 불평분자로 몰려 강제 노동수용소로 끌려가고 말았다.
四십八인중의 한사람인 白承日은 신병으로 몹시 고생을 하였다.
「마이싱」을 계속 맞아야 할 입장이나 당시 북한에는 병원마다 배당량이 제한되었고 또 퍽 귀하였기 때문에 제대로 치료를 받을 수가 없었다.
白承日은 매일 趙素昻, 吳夏英에게 「마이싱」약을 구해달라고 애원하였다. 그러나 얻어준 대도 불과 몇 병 정도였다.
그러던 끝에 한독당 추방과 때를 같이하여 白承日은 병을 지닌 채 申聖均과 함께 平壤시외 「오리」목장으로 밀려나 그곳 잡역부로 떨어졌다.
薛敏鎬는 소위 실업자(實業)대표로 『협의회』발기인 四십 八명중의 한사람으로 끼어있었으나 신병으로 東平壤奬忠동 근처 자진월북자인 梁彦成집에서 신세를 지고 있었다. 그러나 후일 梁彦成이 남에서 좌익으로 있다 전향하여 남로당원들을 경찰에 밀고했다는 혐의로 구속되었고 심문도중에 남한에 있을 당시 금전적으로 도움을 받고 있던 薛敏鎬의 권유로 전향했다는 사실이 나타나 梁과 함께 어디론지 추방당하고 말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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