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납북인사 북한생활기 - 죽음의 세월 46회 1962. 5. 25
  이름 : 사무국 날짜 : 2011-06-06 18:45:46 조회 : 1136  
  파일 :
납북인사 북한생활기 - 죽음의 歲月 46

이름 : 운영자 번호 : 85
게시일 : 2001/03/26 (월) AM 09:57:49 조회 : 28

1962년 5월 25일 동아일보


죽음의 歲月 46


납북인사 북한생활기


딴전부리는 「祖統」
人民經濟大學에 拉致人士大量入學
趙素昻 事事件件이 不平


56년 7월 소위 『협의회』가 결성된 후부터 대량적으로 「인민경제대학」에 저명납치인사들을 보내기 시작하였다. 이 대학은 寺동간부학교를 개칭한 것이었다.
一년제, 二년제로 구분하여 처음에 朴烈, 白象圭, 朴哲圭, 裵重赫등이 입학하였는데 이들 반에는 과거 권투선수로 이름을 떨치던 黃乙秀도 끼어있었다. 뒤이어 梁在廈, 吳正方, 柳冀秀등도 보내어졌다.
趙素昻은 늘 불만이 컸기 때문에 「祖統」간부들과 회의석상에서나 사담좌석에서나 불평을 늘어놓았다. 일반납치인사들의 직업문제와 생계대책을 세워달라는 것이었다.
특히 멀리 떨어진 형편없는 양로원에서 혼자 고생을 하고 있는 崔麟을 크게 걱정하여 그를 데려다가 조용한 휴양소에 있게 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또한 법조계납치인사들도 하루바삐 직장문제를 해결하라고 말하였다. 尹琦燮과 崔東昨도 극구 이에 동조하였다.
그러나 祖統에서는 시기를 보아 조처하겠다는 말뿐이었다. 그리고 이런 일로 하여 趙素昻일파는 도리어 미움만 샀다.
「소련」축구「팀」이 북한에 와서 牧丹峰경기장에서 북한「팀」과 경기가 벌어질 때였다.
趙素昻, 吳夏英, 安在鴻, 嚴恒燮이 초대되었다. 趙素昻만은 이를 거절했다. 그러나 祖統에서 떼를 쓰는 바람에 하는 수 없이 따라갔다.
주석단 좌석에 들어섰을 때 안내원은 이들을 제일 아래 끝자리에 가서 앉게 하였다. 이윽고 金日成, 崔 健등 고위각료들이 나타나자 경기장내는 잠시 박수로 뒤덮였다.
자리에 앉은 金日成이 주위를 돌아보자 趙素昻등이 제일 말단에 앉아 있으므로 안내원을 시켜 곧 자기 가까이에 앉게 하였다.
당황한 안내원이 곧 달려왔다. 安在鴻, 吳夏英, 嚴恒燮은 자리를 옮겼으나 趙素昻만은 끝내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를 않았다. 후에 그 이유를 동료의 한사람이 물었을 때
『우리 넷다 꼭같은 옷에 꼭같은 「넥타이」가 아닌가. 그러지 않아도 모두가 우리를 주시하고 있는데 이리 저리 몰려다니면 구경하러온 것이 아니라 우리가 오히려 구경거리가 될 거란 말야.』하고 웃어 넘겼다. 그러나 실은 그 누가 말한다 하여 이리 저리 자리를 옮겨다니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얼마 후 「祖統」의 지시로 『협의회』임시상무위원회가 열렸다. 이때 이들은 납치인사 전반에 대한 명단 및 현소재지의 파악과 생활대책 강구 그리고 중노동을 하고 있는 일부 납치인사들을 곧 노동으로부터 해방할 것을 결의하고 「祖統」에 건의하였다. 그러나 「祖統」에서는 오히려 딴전을 부렸다. 즉 『협의회』의 목적은 평화통일 방안을 연구하고 남한과 세계 각 국에 대한 선전을 하는데 있는 것이지 일반 납치인사들의 생활대책을 왈가왈부하기 위한 조직체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이로 인하여 불평불만은 이들 납치인사들간에 더욱 고조되었다.
완전히 자기들 이름만 내걸고 정치적 이용을 위한 허수아비에 불과하였다. 특히 가장 열성적이고 기세가 등등하던 嚴恒燮과 宋虎聲의 불만은 컸다.
소위 『재북평화통일촉진협의회』만 조직하고 나면 그토록 열성적으로 일했기 때문에 祖統의장단의 한사람으로 추대되어 한자리 할 줄 믿고 있었던 것이나 이러한 꿈은 산산이 깨어져버렸다.
安在鴻과 吳夏英은 종시 일관 묵묵히 그들이 하라는 대로 추종하였기 때문에 그리 크게 주목은 안 받았으나 소위 重慶派는 자기네 주장을 버리지 않고 내거는가하면 자기네 권한까지 주장하게되어 五八년이후부터는 괴뢰들에게 큰 두통거리가 되었다.

-계속-
 
번호 제목 이름 작성일 조회
243  [동아일보]납북인사 북한생활기 - 죽음의 세월 56회 완결 1962  사무국 2011-06-06 1263
242  [동아일보]납북인사 북한생활기 - 죽음의 세월 55회 1962. 6.  사무국 2011-06-06 1026
241  [동아일보]납북인사 북한생활기 - 죽음의 세월 54회 1962. 6.  사무국 2011-06-06 1049
240  [동아일보]납북인사 북한생활기 - 죽음의 세월 53회 1962. 6.  사무국 2011-06-06 1030
239  [동아일보]납북인사 북한생활기 - 죽음의 세월 52회 1962. 6.  사무국 2011-06-06 1051
238  [동아일보]납북인사 북한생활기 - 죽음의 세월 51회 1962. 6.  사무국 2011-06-06 1033
237  [동아일보]납북인사 북한생활기 - 죽음의 세월 50회 1962. 5.  사무국 2011-06-06 1126
236  [동아일보]납북인사 북한생활기 - 죽음의 세월 49회 1962. 5.  사무국 2011-06-06 1033
235  [동아일보]납북인사 북한생활기 - 죽음의 세월 48회 1962. 5.  사무국 2011-06-06 1056
234  [동아일보]납북인사 북한생활기 - 죽음의 세월 47회 1962. 5.  사무국 2011-06-06 1147
233  [동아일보]납북인사 북한생활기 - 죽음의 세월 46회 1962. 5.  사무국 2011-06-06 1136
232  [동아일보]납북인사 북한생활기 - 죽음의 세월 45회 1962. 5.  사무국 2011-06-06 1002
231  [동아일보]납북인사 북한생활기 - 죽음의 세월 44회 1962. 5.  사무국 2011-06-06 1196
230  [동아일보]납북인사 북한생활기 - 죽음의 세월 43회 1962. 5.  사무국 2006-12-18 2569
229  [동아일보]납북인사 북한생활기 - 죽음의 세월 42회 1962. 5.  사무국 2006-12-18 2290
228  [동아일보]납북인사 북한생활기 - 죽음의 세월 41회 1962. 5.  사무국 2006-12-18 2294
227  [동아일보]납북인사 북한생활기 - 죽음의 세월 40회 1962. 5.  사무국 2006-12-18 2209
226  [동아일보]납북인사 북한생활기 - 죽음의 세월 39회 1962. 5.  사무국 2006-12-18 2389
225  [동아일보]납북인사 북한생활기 - 죽음의 세월 38회 1962. 5.  사무국 2006-12-18 2192
224  [동아일보]납북인사 북한생활기 - 죽음의 세월 37회 1962. 5.  사무국 2006-12-18 2529
[1][2][3][4][5][6][7][8][9][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