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납북인사 북한생활기 - 죽음의 세월 38회 1962. 5. 15
  이름 : 사무국 날짜 : 2006-12-18 12:26:59 조회 : 2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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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북인사 북한생활기 - 죽음의 歲月 38

이름 : 관리자 번호 : 69
게시일 : 2001/03/12 (월) AM 10:06:00 (수정 2001/03/12 (월) AM 11:49:17) 조회 : 26

1962년 5월 15일 동아일보에서


죽음의 歲月 38


납북인사 북한생활기


「방송원고」를 강요
잡혀간 문화인들 이래저래 골려
진단서 낼려면 싸움판


소위 반동저명문화인으로 납치된 후 도중에서 죽거나 병사하거나 딴 곳으로 끌려가거나 하여 文聖里에 끝까지 남은 사람은 柳子厚 李白水 金炯元 李貞淳 李明雨 兪宗烈 馬寅尙등 二십여명에 지나지 않았다.

남로당계간부들에 대한 피의 숙청이 모의되던 당시 딴 곳으로 배치해서도 그랬지만 이들 인사들에게도 당간부와 문예총간부인 宋影 등이 주로 찾아와 남로계 林和, 金南天문인들에게 대한 과거 남한에서의 죄상을 쓰라고 애를 먹인 것은 물론이다. 그리고 몇몇 사람에게는 「조국의 앞날」이란 제목을 주어 강제로 글을 쓰게 하였고 심사결과 그 내용이 자유주의적이며 허무주의적인 색채가 농후하다고 두들겨 패곤 하였다.

五三년 8월 그중 柳子厚, 李貞淳은 일단 東平壤방직공장 근처로 옮겨졌다가 五四년 4월 당시 중평양 기림리로 이동되었다. 여기서 이들은 지시에 따라 대남방송원고를 쓰게 되었다. 그러나 쓰기를 꺼려했고 또 써도 내용이 애매하여 책임자는 『남로계 문화인이 모두 간첩으로 숙청되고 李泰俊마저 규탄을 받고 쫓겨나간 이 마당에 무엇을 우물쭈물하는 거요. 이렇게 되면 당에서 문을 활짝 열고 당신네들을 협력시키려던 보람이 없지 않소. 강력하게 미제국주의를 규탄하는 글을써보시오.』하고 힐책 당하였다.

하는 수없이 柳子厚와 李貞淳은 가끔 대남방송원고를 지시대로 쓰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한번도 직접방송을 시키지는 않았다. 그후 이들 두 인사는 국립도서출판사로 배치되어 제본과 반노동에 종사하며 그곳 합숙소에 기거하였다.

합숙소라곤 하지만 시설이 형편없어 이들은 한방에 수십명씩 노동자가 자는 틈바구니에서 새우잠을 잤다. 다행히 이곳 사장인 李相浩가 四六년에 자진 월북한 남한출신이어서 도움도 받았고 또 이들을 사무원급으로 기용하려 애썼으나 상부로부터 거절을 당했다.

하루는 李貞淳이 몸이 괴로와 일하러 나가지 않배치된 정보원이 격인민병원에 가서 진단서를 맡아오라고 호통을 쳤다. 하는수 없이 李貞淳은 근방 인민병원으로 아픈 몸을 이끌고 찾아갔다.

그러나 인민병원안에는 수십명의 노동자들이 모여서서 진단서를 해달라느니, 그만한 몸이면 능히 노동을 할수있다느니 그곳 원장과 옥신각신하고 있는 것을 보고 어이가 없어 그대로 되돌아왔다. 돌아오는 즉시로 또 노동판에 나가야했던 것은 말할 것도 없다.

한편 영화계 납치인사인 李明雨 崔寅圭등 三, 四명에 대하여 당을 통해 국립영화 촬영소와 상의한 끝에 그곳 부소장으로 있던 姜弘植이 이들을 동정하여 동촬영소에서 일시킬 것을 주장하였다. 그러나 자진 월북하여 그곳에서 일하고 있던 尹龍奎 등이 李明雨 崔寅圭는 반동성이 농후하다고 지적 적극 반대하고 나섰다.

姜弘植을 통하여 이 사실을 알게된 李明雨는 과거 남한에서 서로 친히 지낼 때도 있었던 처지인데다 지금 북한에 끌려와 이렇게 까지 서러움을 받게된 것이 억울하게 여겨졌다.

그는 참다 못해 남한에서 자진월북하여 동촬영소에서 일하고 있는 尹龍奎 등이 과거남한에서 행한 죄상과 보도연맹에 가입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폭로하였다. 이것은 놀라운 사실이 아닐수 없었다. 왜냐면 尹龍奎 등은 六·二五때 자진월북 한 후 지금까지 그들이 남한에서 보도연맹에 들어있었다는 것을 속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삽시간에 큰 물의가 일어났다. 그러나 姜弘植은 그 당시 과거 친분이 두터웠던 동촬영소 소장이었던 朱仁圭가 그 직위에서 추방된 후인지라 그리 크게 발언권이 서지를 않았다. 오히려 감시의 대상이 되고 있는 형편이었다.
결국 이사건으로 李明雨, 崔寅圭 등은 기용되지 못하고 말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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