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납북인사 북한생활기 - 죽음의 세월 41회 1962. 5. 19
  이름 : 사무국 날짜 : 2006-12-18 13:01:07 조회 : 22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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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북인사 북한생활기 - 죽음의 歲月 41

이름 : 관리자 번호 : 73
게시일 : 2001/03/16 (금) AM 10:09:18 조회 : 28

1962년 5월 19일 동아일보에서


죽음의 歲月 41


납북인사 북한생활기


政略結婚으로 懷柔
귀먹고 왈가닥 아내 얻은 宋虎聲 골탕
對日放送에 朴烈利用


55년부터 괴뢰들은 대남선전공세와 간접 침략 및 재일 교포에 대한 대대적인 정치공작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이때부터 朝聯계 간부들이 빈번히 북한을 드나들게 되었다. 괴뢰들은 북한 건설상을 허위선전하고 재남침을 위한 전략전술의 하나로 저명납치인사들을 다시 회유하여 앞자비로 내세우려고 하였다.

그러지 않아도 이지음 재일 교포들간에는 이상한 뜬소문이 떠돌고 있었다. 그들에게 무엇보다도 궁금한 것은 朴烈에 대한 소식이었다. 과거 거류민단단장을 했기 때문에 학살을 당했느니 강제노동수용소에서 죽음의 노동을 강요당하고 있느니 뜬소문은 꼬리를 이었다. 심지어는 북한을 방문하는 일본인 인사들까지 朴烈에 대한 소식을 물었다.

괴뢰들은 마침 잘됐다는 듯이 이 시기를 포착하였다. 곧 朴烈로 하여금 대일 , 대남방송을 시켰다. 『나는 여러분이 궁금해하던 바로 朴烈이란 사람입니다. 나는 현재 이곳에 와서 많은 환대와 교육을 받으며 편안히 살고 있습니다. 내 목소리를 들어보십시오. 바로 이 목소리의 주인공이 죽었다고 소문에 떠돌던 朴烈이올시다.』 이렇게 전제해놓고 상투적인 조국통일론을 하였다. 물론 사전에 祖統에서 작성한 방송원고를 꼭두각시처럼 읽은 데 불과하였다. 그러나 朴烈의 육성을 똑똑히 들을 수 있던 재일 교포들의 마음에 던진 충격은 컸었다.

방송은 이틀 되풀이 되었다. 그러나 이시기에 정치적으로 가장 고민한 것은 그 누구보다도 趙素昻이었다. 그를 앞장세워 대남 방송을 시키려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일체 응하지 않고 三, 四일씩 방에 들어박혀 눈을 감고 명상에 잠긴 채 무엇인가를 읊조리고 있었다.

하루는 위로겸 尹琦燮과 元世勳이 찾아갔다. 尹琦燮이 농조로 『어째 上海假政때 三神교주 노릇하던걸 또 여기서도 하려나?』하고 말을 걸었으나 趙素昻은 그대로 답 없이 가볍게 웃어넘길 뿐이었다. 곁에 있던 元世勳이 다시 『趙선생은 3월에 접어드니 三자생각이 간절하신 모양이야. 三神교주에 三均주의 이론을 또 연구하시려우?』

그러나 趙素昻은 『철없는 사람들 같으니…』하고 쓰게 입맛을 다셨다. 사실 그 당시 그처럼 좋았던 그의 풍채는 쪼글쪼글 얽어 주름져서 볼나위도 없었다. 고민 속에 잠겨있는 그의 심정을 안 괴뢰당은 곧 洪增植을 시켜 무마공작에 나섰다. 찾아온 洪은 몸도 쇠약해졌고 음식형편도 그러니 똑똑한 여자를 택하여 식모겸 같이 있으면 어떠냐고 권하였다.

趙素昻은 웃으며 『그것도 좋긴 좋으나 우리같이 늙은 사람에게 시중들만한 여자가 있을까?』하고 반승락 비슷하게 하였다. 약 일주일후 웃지 못할 「넌센스」가 벌어졌다. 40세 남짓한 咸鏡도 출신 여자를 洪이 데리고와 다늙은 나이에 맞선을 보게 된 것이다. 그러나 그는 맘에 안들었는지 넌지시 거절하였다.

이에 祖統에서는 자기네들이 여자를 알선하여 저명납치인사들에게는 대개 여당원을 보내어 같이 살게 하려는 공작을 펴고있었다. 제일 먼저 祖統에서 주선해준 여자와 살림을 꾸린 것은 尹琦燮이었다. 그는 평생 독신생활을 많이 했고 여자를 얻어도 운명적으로 오랜 부부생활을 해본 적이 그리 없었다. 새로 맞은 여자는 45세가량의 平北출신당원이었다. 5월에 그는 해방동 근처에 조그만 집을 마련하고 새살림을 차렸다.

이 무렵 宋虎聲이 갑자기 귀가 먹어 平北枇峴에 있던 소위 의거입북자학교장을 내놓고 平壤으로 돌아왔다. 그도 그곳에서 30대의 젊은 여당원과 동거하고 있었다. 성격이 남성적인 그녀는 아무리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도 귀가 먹은 宋虎聲이 그 말을 알아듣지 못하기 때문에 자기 가슴을 두드리며 홧김에 종일 집을 비워놓고 떠나 돌곤 하였다. 그래서 때로 宋虎聲이 그녀를 나무라면 오히려 『늙은 귀머거리하고 살아주는 것만도 다행인줄 알아요. 아이고 내 신세야…』 하고 푸념을 하였다.

이를 첫출발로 하여 괴뢰들은 납치인사들에 대한 정략적 결혼을 시키기 시작하였고 납치인사들간에 수많은 희비극이 이때부터 벌어지기 시작하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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