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납북인사 북한생활기 - 죽음의 세월 56회 완결 1962. 6. 14
  이름 : 사무국 날짜 : 2011-06-06 19:25:13 조회 : 12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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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북인사 북한생활기 - 죽음의 歲月 완결

이름 : 운영자 번호 : 108
게시일 : 2001/04/14 (토) AM 10:00:35 조회 : 72

1962년 6월 14일 동아일보


죽음의 歲月 完


납북인사 북한생활기


사라진 「著名人士」
金若水 一派도 끝내는 肅淸
갖가지 뜬소문만…


반동으로 지목된 저명납치인사중 崔麟, 玄相允, 徐延禧, 白寬洙등은 그 후 어떻게 되었을까? 특히 趙素昻, 崔東旿, 嚴恒燮은 어떠한 말로를 더듬어야 하였을까? 이는 가장 궁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玄相允과 白寬洙는 고령에다 몸이 쇠약하여 平壤근처 龍崗양로원에 보내져 그곳에서 외로운 여생을 허무하게 보내고 있었다. 말이 양로원이지 그 시설이나 설비는 이루 말할 수 없이 참혹한 것이었다. 이들 인사는 양로원안에서 보다도 오히려 밖에 나가 산간을 산책하는 것을 유일한 소일거리로 삼고있었다.
한편 혼자 쓸쓸히 平南 肅川근방 양로원에 있던 崔麟은 병이 더욱 심하여져 그대로 둘수 없게 되자 「祖統」의 일선으로 平北宣川에 있는 옥호동 요양원으로 옮겨졌다. 그러나 이곳시설도 그리 좋은 편은 아니었다. 그는 빈약한 진료소에서 근근 연명하였다. 이를 본 동네 할머니들이 딱하게 여겨 죽도 쑤어다 주어 여러모로 따뜻하게 대해주었다.
孫晋泰는 일시나마 『협의회』관계로 新義州에서 平壤으로 올라와 그곳 교육도서출판사 편찬부에서 비교적 좀힘이 덜 드는 일을 하고있었다.
그러나 이것도 오래가지 않아 숙청파동으로 平壤과수농장 정리원으로 쫓겨나갔다.
徐延禧도 마찬가지였다. 얼마동안은 西平壤 箕林동 『협의회』합숙소에서 기거하였으나 그 후 무의무탁한 말단양로원으로 유배되었다.
드디어 五九년부터 重慶일파에 대한 숙청태세가 노골화하였다. 그 해 11월에 열린 소위 『재북평화통일촉진협의회』임시대회에는 趙素昻등 重慶파는 숫제 참가도 시키지 않고 安在鴻, 吳夏英, 金孝錫, 朴寶廉등을 대대적으로 내세워 보고와 연설을 시켰다.
60년 이윽고 趙素昻일파에 대한 노골적인 박해가 시작되었다.
이미 정치적인 이용가치가 없다고 단정한 괴뢰들은 정치보위부를 통해 이들에대한 가혹한 심사를 전개하였다. 물론 趙素昻일파는 그 불만을 늘 해왔던 것이 사실이었다.
어느 날밤 정치보위부원들이 趙素昻집을 찾아왔다. 그들은 아무런 말 한마디 없이 무조건 그를 데리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 후 趙素昻의 모습을 平壤시내에서 본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얼마 후 사방에서 뜬소문이 퍼지고 가는 곳마다 수군거리게 되었다.
이 뜬소문에 의하면 자살을 했다느니 병사를 했느니 투옥을 당했느니 여러 소문이 떠돌았지만 한편 극비밀리에 총살을 했다는 불길한 풍문도 있었다.
그러나 이 뜬소문들 중 그 어느 것도 확인할 수 없지만 하여간 60년 이후 平壤에서 趙素昻의 그림자는 사라져버렸다.
이와 때를 같이하여 崔東旿와 嚴恒燮의 소식도 끊어졌다.
또한 소위 『재북평화촉진협의회』의 창립에 솔선 나서서 충실했던 국회 「뿌락지」사건의 주모자들인 金若水등 일파도 끝내는 숙청의 고배를 마시고야 말았다. 그들은 자칭 좌익이요. 六·二五때 서울형무소에서 탈옥하였으므로 크게 출세할 줄 알았으나 그것은 한날 헛된 꿈이었다.
결국 납북인사들이나 자진월북자들은 그 성격을 불구하고 모두 숙청대상이었다.

-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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