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납북인사 북한생활기 - 죽음의 세월 49회 1962. 5. 29
  이름 : 사무국 날짜 : 2011-06-06 19:09:38 조회 :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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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북인사 북한생활기-죽음의 歲月49

이름 : 운영자 번호 : 99
게시일 : 2001/04/06 (금) AM 10:18:11 조회 : 34

1962년 5월 29일 동아일보에서

죽음의 歲月 49


납북인사 북한생활기


中堅人士 勞動收容所로
惡質班長殺害를 計劃
金晋燮이 主動·數十名 糾合


소위 『재북평화통일촉진협의회』결성덕택으로 平壤으로 불려 올라온 중견납치인사들은 중앙공급 四급 대우를 받으면서 그런 대로 지낼 수 있었으나 그것도 약 二년간에 불과하였다. 정치적 이용가치가 없어지면 제한(制限)단계를 두기 마련이었다. 특히 괴뢰당내에서 불평불만분자들인 趙素昻일파를 제거하라는 소리가 점점 높아갔다.
58년 5월 이윽고 이들 중견납치인사들은 강제 노동수용소로 밀려나갔다.
荊德基, 金準坪, 金時明, 趙炳來등이 가장 규모가 큰 咸北 阿吾地탄광 노동수용소로 보내져일반노동자와 꼭같이 노동군 신세가 되었다.
다행이 金準坪은 이곳 수용소 안의 초·중교 여교원으로 있는 趙守錄을 만나 서로 딱한 처지를 동정하던 끝에 동거생활을 하게되었다. 본시 이들은 왜정 때부터 친분 있는 사이었다.
趙守錄이 휴가를 얻어 平壤으로 가게 되었을 때 金準坪은 자기의 처참한 생활환경을 써서 당시 사범대학교수로 있던 옛친구 韓吉淑에 전하게 하고 구원해줄 것을 호소하였다. 그러나 오히려 이 사실이 탄로되어 韓은 규탄을 받은 후 과학원의 일개연구원으로 추방당하였다.
한편 金晋燮, 姜柄順, 白鵬濟, 計南秀, 朴勝喆, 李澤등은 종교계인사들이 먼저 수용된 兩江도 滋城벌목사무소 및 사업장 강제노동수용소에 수용되었다.
오랜만에 납치된 후 생사를 모르던 南宮赫등과 만나게 된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지만 노동반장이 이를 제지하기 때문에 이들은 서로 말도 자유로이 건네지 못하였다.
이들은 대개 벌목장에서 반사무원 반노동자의 일을 하였다.
이 수용소에서 가장 고통을 받은 것은 식량문제였다. 일년 열두달 쌀이라곤 구경조차 할 수 없어 옥수수와 수수가 유일한 식량이었다.
그럼으로 수렵조에 배치 받기를 유일한 희망으로 걸고 있었다. 물론 산을 타고 따라다니려면 그 고생이란 이루 말할 수 없었지만 짐승고기와 짐승의 피를 먹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한가지 이 노동수용소에서 희망을 걸고 있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열성적으로 책임량을 초과 달성하면 一년에 십일간의 휴가를 얻을 수 있는 일이었다.
휴가만 얻게 되면 이 강제 노동수용소에서 잠시 나마 해방되어 平壤에도 갈 수 있고 또 휴양소에서 푹 쉴 수도 있었다.
무엇보다도 가장 곤란한 것은 의료시설이었다. 병만 걸리면 약이 없기 때문에 그대로 낫거나 또는 죽음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납치인사중 누가 병이 나면 일반노동자들은 그들이 극진히 아껴주었던 약초를 가져다 주기까지 하였다.
이처럼 조용하던 수용소 안에 큰 사건이 벌어졌다.
金晋燮이 주동으로 五, 六십명이 규합하여 너무 노동을 심하게 강요하는 악질 노동반장 살해계획을 꾸민 것이었다. 그러나 거사직전 이 계획이 탄로되어 金晋燮이 체포되었다.
그가 내무서원에 붙들려 갈 때 수용소 일반 노동자들은 동정 끝에 파업소동이 일어났다.
이 사실이 滋城내무서에 보고되자 큰 사건으로 보고 수십 명의 서원이 동원되어 수십일 간에 걸쳐 한사람씩 고문식 심사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곧 납치인사들을 분리 수용시켰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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