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납북인사 북한생활기 - 죽음의 세월 53회 1962. 6. 8
  이름 : 사무국 날짜 : 2011-06-06 19:21:18 조회 :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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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북인사 북한생활기 - 죽음의 歲月 53

이름 : 운영자 번호 : 104
게시일 : 2001/04/11 (수) AM 09:50:59 (수정 2001/04/11 (수) PM 08:16:51) 조회 : 30

1962년 6월 8일 동아일보에서


죽음의 歲月 53


납북인사 북한생활기


逆효과 난 轉職運動
子息안고 「아파트」서 쫓겨나기도
극성부린 勞動班長被殺


일반 국회의원 중 崔錫洪은 남한 출신 여자와 中平壤 新陽동 국영 「아파트」二층에 방을 얻어 살림을 시작 아이도 낳았었다.
그러나 그녀가 얼마 후 「주마담」이 덮쳐 자리에 눕게되어 극진히 간호했지만 결국 죽고 말았다. 崔는 부득이 「아파트」에서 어린애를 안고 쫓겨나는 신세가 되었다. 괴뢰치하에서는 부부가 살림을 안 하는 경우 합숙소로 가게끔 주택규정이 되어있다. 그는 할 수없이 어린애를 탁아소에 마끼고 平壤新興섬유협동조합에서 일하는 동료인 鄭圭好, 曺圭卨의 합숙소로 들어갔다.
平壤가축조합에서 辛容勳, 崔丙柱와 같이 일하던 宋昌植은 봉급만 타면 매일같이 소주만 먹고 신세타령과 불평을 늘어놓다가 결국 조합간부들의 눈밖에 나 中和농업협동조합으로 추방되었다.
특히 趙炳漢은 『협의회』총무부장인 南相元과는 慶北聞慶 동향친구인 관계로 그를 『협의회』로 찾아가 현재 일하고 있는 소비조합에서 딴 연구기관으로 이동시켜 달라고 자주 간청하였다.
南相元도 정에 못이겨 그 뜻을 「祖統」간부에게 전하였다. 자기 마음대로는 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도리어 이것이 화근이 되었다. 즉 趙炳漢이 윗사람을 찾아다니며 좋은 자리로 옮겨갈 운동을 한다는 소문이 퍼졌다.
祖統에서는 지금까지 그만큼 대우를 해줬는데도 안일한 곳을 찾는 그 자체가 이미 반동성을 띠고 있다고 규정 平南龍城기계제작소의 중노동자로 추방하고 말았다.
그러나 납치된 일반 국회의원들 중 가장 불행한 사람은 吳龍國이었다.
그는 처음 金景道와 함께 平壤도자기 공장에서 일하고 있었다.
어느 날 職盟회의에서 그는 신랄한 비판을 받았다. 여직공까지 그를 가리켜 남한에서 잘먹던 풍습이 아직까지 남아있으니 노동으로 사상개조를 해야 한다고 핏대를 올렸다. 분김에 吳龍國은 오히려 그들을 무식한 자들이라고 해대었다.
발칵 회장은 뒤집히고 며칠 후 그는 南平壤 蓮花동 근처 창고 같은 「바락크」에 수용되었다. 이곳에는 벌써 三십여명의 남자가 수용돼 있었다. 노동수용소로 가는 대기소였다.
며칠 후 그는 平北鐵山광산 강제 노동수용소로 보내졌다.
그는 鐵山에서 탄광광부로 중노동에 시달렸다.
그곳에서 노동하는 사람들은 거개가 숙청된 수천명의 남노당원들이었다.
노동반장이란 자는 유독 吳龍國에대하여 밤낮 계획 숫자를 완수 못한다고 욕설을 퍼부었다. 상부에 보고하여 식량배급을 줄이고 감봉하겠다고 위협도 하였다. 이윽고 6개월 감봉에 일당 一백「그람」(보름은 일당 七백「그람」)으로 식량을 줄인다는 선고가 내렸다.
비가 몹시 퍼붓는 날, 계획숫자를 완성하려면 까마득했다. 보복심에 불타던 吳龍國은 드디어 곡괭이로 노동반장의 허리를 내리찍었다. 죽음을 각오한 행동이었다. 그는 쓰러진 노동반장을 또내리쳤다. 주위에 섰던 사람들이 급히달려들어 말렸지만 빈사상태에 빠진 노동반장은 곧 위생소에서 응급치료를 받았으나 출혈이 많아 수일후 사망하였다.
吳龍國은 곧 내무서원에 체포되어 어디론가 연행되었다. 그 후 그의 생사는 알 길이 없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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