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납북인사 북한생활기 - 죽음의 세월 44회 1962. 5. 23
  이름 : 사무국 날짜 : 2011-06-06 18:40:08 조회 : 1196  
  파일 :
납북인사 북한생활기 - 죽음의 歲月 44

이름 : 관리자 번호 : 78
게시일 : 2001/03/20 (화) AM 10:22:21 (수정 2001/03/20 (화) AM 11:05:02) 조회 : 31

1962년 5월 23일 동아일보에서


죽음의 歲月 44


납북인사 북한생활기


판에박은듯한 形式
可觀인 「平和統一促進協」 結成大會
꼭두각시 놀음으로 幹部에 뽑히기로


소위 「재북평화통일촉진위원회」결성대회에 앞서 발기인 四십八명에게 질은 그리 좋지 못하지만 소련제 여름양복지 한 벌과 「와이샤쓰」「넥타이」돼지가죽으로 만든 우둘투둘한 깜안 구두 한 켜레씩이 특별 배급되었다. 四십八명의 인사들은 지정된 西平壤백화점 양복부에서 꼭같은 식으로 양복을 지었다.
결성대회일인 7월 3일이 임박하자 발기인들도 모르게 당과 祖統에서 지시한대로 각지방에 산재해있던 납치인사중 일반국회의원 또는 저명인사 등 각계 각층 납치인사들이 본의 아닌 이 회의에 참석키 위하여 소재지당간부에 인솔되어 平壤으로 몰려들었다.
일반국회의원으로는 黃海도 일대의 농장, 과수원 등에서 일하고 있던 鄭光好, 崔錫洪, 趙圭卨, 鄭仁植, 辛容勳, 崔丙柱, 趙炳漢, 金永東, 李庚雨등 三십여명이었고 중요인사로는 玄相允, 孫晋泰도 끼어있었다. 다만 崔麟은 극도로 노쇠하여 여기에서 빠졌다. 일반 납치인사로는 李澤, 許南洙, 荊德基, 蘇完奎, 朴勝喆, 李惠卿, 姜柄順등이 광산, 탄광 등 중노동에서 풀려나와 이 회의에 참석키 위해 평양국영여관에 와있었다.
드디어 3일 하오 1시 牧丹峰극장에서 괴뢰의 정치적 허수아비인 「재북평화통일촉진협의회결성대회」의 막은 올려졌다.
극장주위에는 괴뢰경무원(헌병) 및 호위대원들이 삼엄하게 둘러서서 입장시에는 일일이 명단과 대조하였다.
괴뢰들이 이처럼 3일로 날짜를 잡은 데는 이유가 있었다. 그것은 金日成을 비롯한 괴뢰 간부들이 7월 중순 공산국가를 순방할 예정이 있었기 때문에 떠나기에 앞서 그 결과를 알고자 한데 있었다.
지정좌석 九백여석에는 괴뢰당간부, 각정당 사회단체 간부 및 참가가 허용된 납치인사들로 어느덧 꽉 들어찼다.
주석단상에는 고급의자가 二십여개 그리고 그 후면에 보통 의자가 四십여개 나란히 놓여있었다. 그 한가운데 커다란 金日成의 초상화가 걸려있고 재북평화통일촉진협의회의 결성을 축하하는 프라카드가 가로 질려있었다.
이윽고 물을 끼얹은 듯 조용하던 회의장내에 갑자기 박수의 물결이 일어났다. 崔鏞健을 선두로 朴正愛 朴金喆등 십여명의 괴뢰고위간부들이 등장하였기 때문-. 총기립을 한 채 박수는 약 五분간 계속되었다.
뒤이어 발기인중 吳夏英, 趙素昻, 安在鴻, 嚴恒燮, 宋虎聲등 집행위원 십여명이 입장하였다. 하나같이 꼭같은 옷과 넥타이 마치 판에 박은 듯한 인상이 처음부터 그들의 꼭두각시란 것을 십분 말하고 있었다.
金日成은 平壤시내에 있으면서도 참석치 않았다.
崔鏞健, 朴正愛등이 한가운데 으젓이 자리잡고 그 옆과 뒤에 趙素昻등 발기인이 앉았다. 이것만으로도 이미 주객이 전도된 감이었다.
安在鴻의 결성식 선언에 이어 미리 짜놓은대로 임시의장단에 趙素昻, 吳夏英, 安在鴻이 뽑혔다. 趙素昻이 한시간여에 걸친 조직보고가 있은 다음 괴뢰당 대표로 崔鏞健, 민주당 대표로 洪箕疇, 청우당 대표로 金建鉉등등이 장황한 축사를 늘어놓았다.
간부선거에 들어가 최고위원에 趙素昻 安在鴻 吳夏英 상무위원 십一명 집행위원 십九명 일반중앙위원 一백여명을 선출하였다. 일반국회의원들은 대개 중앙위원이란 감투를 하나씩 배당 받았고 玄相允, 孫晋泰, 徐延福등도 그 속에 끼었다. 그리고 불참한 崔麟에게도 형식적이나 꼭같은 감투를 배당하였다. 물론 이것도 당과 祖統에서 사전에 제멋대로 짜놓은 연극임은 물론이다.
끝으로 남한동포에 보내는 결의문 낭독이 있은 후 폐막되었다. 이날 저녁 이 결성을 축하(?)하는 만찬회까지 벌어졌다.
그네들이 앞으로 이 협의회를 정치적으로 어떻게 이용하던 간에 일반국회의원들은 잠정적이나마 그 회유책으로 중노동을 면하고 平壤으로 돌아와 정착할 수 있었기 때문에 우선 살 것 같았다.

-계속-
 
번호 제목 이름 작성일 조회
243  [동아일보]납북인사 북한생활기 - 죽음의 세월 56회 완결 1962  사무국 2011-06-06 1262
242  [동아일보]납북인사 북한생활기 - 죽음의 세월 55회 1962. 6.  사무국 2011-06-06 1025
241  [동아일보]납북인사 북한생활기 - 죽음의 세월 54회 1962. 6.  사무국 2011-06-06 1048
240  [동아일보]납북인사 북한생활기 - 죽음의 세월 53회 1962. 6.  사무국 2011-06-06 1030
239  [동아일보]납북인사 북한생활기 - 죽음의 세월 52회 1962. 6.  사무국 2011-06-06 1051
238  [동아일보]납북인사 북한생활기 - 죽음의 세월 51회 1962. 6.  사무국 2011-06-06 1032
237  [동아일보]납북인사 북한생활기 - 죽음의 세월 50회 1962. 5.  사무국 2011-06-06 1126
236  [동아일보]납북인사 북한생활기 - 죽음의 세월 49회 1962. 5.  사무국 2011-06-06 1033
235  [동아일보]납북인사 북한생활기 - 죽음의 세월 48회 1962. 5.  사무국 2011-06-06 1055
234  [동아일보]납북인사 북한생활기 - 죽음의 세월 47회 1962. 5.  사무국 2011-06-06 1146
233  [동아일보]납북인사 북한생활기 - 죽음의 세월 46회 1962. 5.  사무국 2011-06-06 1135
232  [동아일보]납북인사 북한생활기 - 죽음의 세월 45회 1962. 5.  사무국 2011-06-06 1002
231  [동아일보]납북인사 북한생활기 - 죽음의 세월 44회 1962. 5.  사무국 2011-06-06 1196
230  [동아일보]납북인사 북한생활기 - 죽음의 세월 43회 1962. 5.  사무국 2006-12-18 2568
229  [동아일보]납북인사 북한생활기 - 죽음의 세월 42회 1962. 5.  사무국 2006-12-18 2289
228  [동아일보]납북인사 북한생활기 - 죽음의 세월 41회 1962. 5.  사무국 2006-12-18 2294
227  [동아일보]납북인사 북한생활기 - 죽음의 세월 40회 1962. 5.  사무국 2006-12-18 2208
226  [동아일보]납북인사 북한생활기 - 죽음의 세월 39회 1962. 5.  사무국 2006-12-18 2388
225  [동아일보]납북인사 북한생활기 - 죽음의 세월 38회 1962. 5.  사무국 2006-12-18 2192
224  [동아일보]납북인사 북한생활기 - 죽음의 세월 37회 1962. 5.  사무국 2006-12-18 2529
[1][2][3][4][5][6][7][8][9][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