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납북인사 북한생활기 - 죽음의 세월 40회 1962. 5. 18
  이름 : 사무국 날짜 : 2006-12-18 12:39:39 조회 : 2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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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북인사 북한생활기 - 죽음의 歲月 40

이름 : 관리자 번호 : 71
게시일 : 2001/03/15 (목) AM 10:11:24 (수정 2001/03/15 (목) PM 07:22:03) 조회 : 31

1962년 5월 18일 동아일보에서


죽음의 歲月 40


납북인사 북한생활기


好意뒤엔 검은손
著名拉致人士들 오랜만에 술맛보고
목욕할때도 監視의 눈


54년 4월 드디어 趙素昻 등 저명납치인사들은 오랜 시골생활을 면하고 도시로 나오게 되었다. 趙素昻, 吳夏英, 安在鴻, 尹琦燮, 明濟世, 元世勳 등은 西平壤 月香동 六반으로 옮겼다. 폭격으로 파괴된 건물의 벽돌을 모아다 임시로 지은 집이었다. 대개 방이 둘에 조고만 마루하나의 三칸집이었다.

한편 趙憲永 吳正方 梁在廈 張連松 白象圭 丘德煥 등은 西平壤 箕林里근방 새로 생긴 해방동 一二반에 자리를 잡았다. 역시 폭격에 무너진 집들을 수리한 것이었다.

특히 趙素昻과 吳夏英이 같이 기거하게된 집 방안은 미농지로 깨끗이 도배까지 하였고 이불 두 채에 책상하나 그리고 공산주의 서적과 한서적을 몇 권 마련해놓고 있었다.

다만 비서겸 감시원인 젊은 사복 내무서원이 집마다 한 명씩 부관이란 명칭으로 배치되어 있을 뿐 始族면에 있을 때보다도 더 자유로왔다. 그러나 소위 이 부관이란 청년은 목욕 갈 때나 이발하러 갈 때나 꼭 따라다녔다.

安在鴻과 尹琦燮이 한집에 기거하였는데 이들은 그리 나다니지도 않고 집에 들어박혀 安在鴻은 한서적만 읽고 尹琦燮은 낮잠 자는 것을 유일한 소일거리로 삼았다.

「메데」날인 5월 1일이 가까워서였다. 지금까지 생각지도 못했던 진귀한 선물상자가 이들 각자마다 날라들어 온 것이다. 무슨 영문인지를 몰랐다. 「레이숀」상자 만한 상자곽에 각자의 이름이 정중히 적혀져 있는 것이었다. 뜯어보니 그 속에는 납치된 이래 지금껏 구경도 할 수 없었던 삼노주 四홉들이 2병, 고급담배 「豊年」두갑, 「케이크」, 빵, 「쪼코렛트」, 수건 등이 가득 가득 들어 있었다. 알고 보니 金日成이 보낸 선물이라는 것이었다.

이런 명절에는 의례히 인민배우, 공훈배우, 조통 최고간부 등에게 金日成이 인심을 쓰노라고 보내는 선물이었는데 이번 처음으로 이들 저명 납치인사들에게만 선심을 써 본 것이었다. 어쨌든 이들은 오랜만에 고급주의 맛을 보았고 달콤한 「초코렛트」를 혀끝에 물어볼 수 있었다.

이로부터 이들 저명인사를 포섭하기 위하여 괴뢰들의 호의는 계속 베풀어졌다. 특히 열성적이던 嚴恒燮의 아들인 嚴基南은 六·二五때 자진월북한 자인데 그는 당의 지시에 의해 특별추천을 받고 「모스크바」유학까지 가게 되었다. 嚴恒燮은 이것을 큰 자랑삼아 더욱 열성적으로 납치인사 포섭에 나섰다. 그럼으로써 자기에게만은 그런 호의가 끝까지 뻗힐줄 알았겠지만 그 후 과연 嚴恒燮의 말로는 어떻게 되었던가….

이당시 더욱 후대 받은 것은 宋虎聲이었다. 소위 해방사단장으로 있다 平壤으로 귀환한 그는 개선장군인양 祖統 간부가 베푼 환영만찬회에 참석하여 대환영을 받았고 월북자들만을 끌어 모은 소위 平北枇峴 소위 「의거입북자학교」교장이란 감투까지 쓰고 수일 후 부임하게 되었다. 더욱이 그는 당시 부하로 다니고있던 국군 월북자 表文源 괴뢰소장의 결혼식이 中平壤 平和閣이란 국영식당에서 거행될 때는 그 주례를 서는 등 바쁜 나날을 보내다 의기양양하게 부임지로 떠났다.

趙素昻, 吳夏英, 安在鴻등은 祖統 간부와 함께 가끔 연극, 무용 구경도가고 국영식당에서 자유로이 음식도 먹었다.

한편 해방동에 거처하던 趙憲永은 한의학에 정통하다하여 이름이 자자했다. 그는 원래 한의학에 풍부한 지식을 갖고 있었는데 어디서 한의서적을 구해 가지고 그것만 열심히 읽고있었다. 그러므로 동료 중에 누가 병이 나면 도맡아 진맥하고 방문을 내었다.

심지어 이 소문이 퍼져 金枓奉에게까지 불려가 그의 맥을 보아주었다. 그 결과 크게 효험을 보고되어 당 고위층까지 그를 초대하는 등 왕진하기에 바쁠 정도였고 그것으로 趙憲永은 유일한 소일거리로 삼고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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