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납북인사 북한생활기 - 죽음의 세월 51회 1962. 6. 5
  이름 : 사무국 날짜 : 2011-06-06 19:18:37 조회 :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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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북인사 북한생활기 - 죽음의 歲月 51

이름 : 운영자 번호 : 102
게시일 : 2001/04/09 (월) AM 10:07:55 조회 : 41

1962년 6월 5일 동아일보


죽음의 歲月 51


납북인사 북한생활기


便利한 烙印 「反動」
白麟濟등 醫學界重鎭들도 悲慘한 末路
부릴대로 부리곤 肅淸


괴뢰들은 납치 당한 인사 중 기술자 특히 의사들은 좀 특별한 대우를 하였다. 그러나 그 우대란 것도 언제까지 지속되지는 못했다. 그들은 이용가치가 없어지면 무자비하게 숙청해버리는 근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의학계의 중진인 白麟濟, 申聲雨, 金時昌, 金河鎭, 張志萬등 五명은 수다한 파란곡절을 겪어야했다. 그중 참담했던 것은 白麟濟와 張志萬이었다.
일단 滿浦에 이르렀을 때 기술자 및 의학계납치인사들은 모두 직장에 배치되었으나 유독 白麟濟만은 그대로 수용소에 남아있어야 했다. 그것은 그가 종교인이라는데 대하여 괴뢰들의 증오심이 컸기 때문이었다. 五一년 4월 平壤으로 돌아온 후 일부 의사들의 요청에 의하였는지 잠정적이나마 소련적 십자병원 욋과에서 일하게 되었다. 그러나 중요한 일은 전연 맡기지도 않았고 수술하는 현장을 볼 때마다 너무나도 엉터리없는 데 불만이 컸다.
이로 인하여 그는 오히려 소위 비당원 직맹(職盟)회의에서 시기심이 강한 동료직원들한테 신랄한 비판과 충고를 받아야 했다. 이때 원래 성급한 그는 대뜸 『몸도 늙었고 하니 이곳을 그만두면 될것아니냐.』하고 누추한 합숙소로 곧바로 돌아갔다. 결국 그는 정치보위부에 의하여 기술자지만 아무쓸모 없는 반동으로 낙인이 찍혀 甘興리 임시수용소로 쫓겨났다. 五三년 봄까지 이곳에서 그는 딴 수용자들과 함께 농사일 또는 채소밭을 가꾸며 최저한도의 생활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金時昌은 원래 마음이 온순하고 학자적인 자세를 취하였기 때문에 이곳저곳 수없이 전전하기는 하였지만 그 실력을 인정받아 휴전후 平壤醫藥大 욋과과장겸 교수라는 감투까지 주어 나은 대우를 하였다. 사실 그곳에 있는 그 어는 의사보다도 실력이 뛰어났기 때문에 신망이 컸다. 그러나 그것도 오래가지는 못하였다. 소위 소련에 유학갔다온 젊은 의학도들이 배치되기 시작하자 그들은 그를 가리켜 예방(豫防)의학은 전연 모를뿐아니라 「부르죠아」근성이 농후한 자라고 비난의 화살을 퍼부었다.
그리하여 그는 자기보다 십여년이나 밑인 소련유학출신에게 과장자리를 빼앗겼다. 이를 동정한 남한출신 의사들과 학생들간에 곧불평불만이 점고 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도리어 이것이 화근이 되어 金時昌은 종파주의로 몰려 교수자리마저 밀려나 어느 조그마한 의학연구원의 연구원으로 쫓겨가야 했다.
그러나 보다 가혹한 운명이 그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金時昌자신은 모르고 있었다.
申聲雨는 마침 지금은 숙청 당했지만 당시 괴뢰보건상을 지내고 있던 李炳南의 추천으로 平壤의약대학 안과과장 겸 교수로서 의젓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비교적 늙은 편이었지만 젊은 여자와 결혼까지 하여 단란한 가정을 꾸몄고 괴뢰들도 그만은 정책적으로 등용하려 하였다. 그러나 이 역시 오래가지는 못하였다. 괴뢰보건상으로 있던 李炳南이 그 자리에서 쫓겨나는 것과 때를 같이 하여 申도 휴양소 의사로 전락하고 말았다.
金河鎭은 처음 괴뢰 三九호 인민군 병원에서 일하고 있엇따. 그러나 곧 의약대학병원을 거쳐 일약 소련적십자병원 욋과과장이란 감투를 썼다. 그러나 출신이 지주성분인데다 사변때 자진 월북한 친형 金洛鎭이 平壤에서 범죄를 저지르고 교화소로 들어가는 바람에 화가 金河鎭에게까지 미쳐 그 직위에서 쫓겨났다.
그러나 이들중에서도 제일 불쌍한 것이 張志萬이었다. 그는 과거 국군군의로 있었던 사실을 속이고 平壤의약대학에서 의사로 있으면서 그곳 간호보조원과 살림까지 꾸미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가 무식하고 추악하여 몇 달 살지 못하고 헤어지려 했으나 그녀가 당원이기 때문에 그럴 수도 없었다. 그래서 심지어는 밥먹을 때 상을 들려놓고 먹는 소동까지 벌려야 했다.
그러나 그후 그가 과거 국군군의로 있었던 것을 트집잡아 수개월동안 정치보위부에서 심사를 받은 끝에 어디론가 그들에 의해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그후 그의 행방은 요원한 수수께끼에 묻히고 말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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