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납북인사 북한생활기 - 죽음의 세월 48회 1962. 5. 27
  이름 : 사무국 날짜 : 2011-06-06 19:05:59 조회 :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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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북인사 북한생활기-죽음의 歲月48

이름 : 관리자 번호 : 96
게시일 : 2001/04/03 (화) PM 03:47:39 조회 : 24

1962년 5월 27일 동아일보에서


죽음의 歲月 46


납북인사 북한생활기


收容所란 바로 監獄
倭政때 地主. 官吏등은 平壤서 못살게
어딜 가든 旅行證明書

57년 10월부터 북한전역에 걸쳐 대대적으로 착수한 강제노동수용소 건물공사가 58년 2월 십여군데 이상 준공되었다.

제일 규모가 큰 것이 咸北 阿吾地탄광 다음이 咸北 甲山근처 火田 개간을 목적으로 하는 수용소와 兩江도 滋城근방 벌목강제노동수용소였다. 그리고 平北鐵山광산과 江原도 高城근방 개간을 위한 노동수용소등이었다.

괴뢰들은 이미 54년부터 이러한 강제 노동수용소의 기초계획을 세우고 소위 <민주수도정화>란 명목아래 政令까지 내려 平揚시내 거주 정치적 불신임자 즉 지주,자본가출신, 과거의 종교계인물이나 왜정 때의 관리 또는 전과자들을 조사하여 시외 십二<키로> 밖으로 내쫓았다. 그러나 가족들은 시내에 남아있으므로 몇 달 후 다시 몰래 숨어들어 오기 마련이었다.

이런 현실에 골치를 앓다못해 괴뢰들은 가족단위로 平壤서 멀리 내쫓아 외딴곳에 수용, 부려먹으려고 강제 노동수용소를 만들었다.
金枓泰,崔昌益을 중심한 延安派 숙청이 최고조에 달하던 것과 때를 같이 하여 먼저 平壤에 남아있던 종교계 납치인사들을 강제 노동수용소로 내몰았다.

58년 3월 말쯤 깊은 밤에 경비대가 비밀히 찾아와 吳澤寬, 宋台用, 朴相健, 南宮赫등을 차에 태워 南平壤역으로 나갔다. 역구내에 들어서니 이미 그곳에는 수백 명이 각기 봇짐들을 꾸려들고 웅성거리고 있었다. 노인, 어린애를 업은 아낙네, 십여세씩 된 아동들도 그 속에 끼여 모두 핏기를 잃은 불안한 표정들이었다.

吳澤寬등도 이들과 함께 기차로 兩江도 滋城 벌목사업소 강제 노동수용소에 수용되었다. 수용소 안에는 임시로 지은 <바락크>가 백여 채, 간이우편국, 진료소, 식당 등도 있고 설비가 참혹한 부속양로원도 있었다.

가족이 있는 사람은 방 하나에 부엌이 달린 <바락크>에 들고 독신자들은 큰 방에 집단적으로 수용되었다. 그곳에는 경비원 대신 노무반장이 배치되어 그의 지시를 받게끔 되어있었다.

60세 이하의 건강한 남녀들은 매일같이 벅목과 개간사업에 종사하였다. 책임량이 있기때문에 그것을 완수하자면 참으로 뼈가 부서지는 중로동이었다.
吳澤寬과 南宮赫은 부속양로원에 보내져 매일같이 그물뜨기와 새끼꼬기에 동원되었다. 당시의 임금은 최고 三천五백원에서 최하 천원 내외, 최저의 생활을 간신히 이어나갈 정도였다. 수용소에 들어간 사람은 일가친척이 죽거나 결혼을 할 때도 군대처럼 여행 증명서를 받아가야 임시 휴가를 얻을 수 있었다. 편지도 엄격하게 검열되어 수용소 안에 생활이나 불평은 조금도 쓸 수 없고 또 써봤댔자 모두 삭제 당하였다.

吳澤寬은 수용소 안에서 결혼식이 있을 때마다 주례를 섰다. 뿐 아니라 이곳에 수용된 종교계 인사들은 그 누구나 존경을 받았고 또 동정들을 했다.
특히 방랑생활을 하다 붙들려온 李春植이란 청년은 몹시 朴相健을 따랐다. 어느날 李春植이란 청년이 노동반장과 시비가 벌어진 끝에 몽둥이로 노동반장을 때려 수일 후 사망한 사건이 벌어졌다.

이로 인하여 李春植뿐 아니라 朴相健까지 내무소로 연행된 후 행방불명이 되고 말았다. 그리고 이때부터 일반사람과 종교계 인사들과 구별하여 놓고 더욱 자유를 구속하기 시작하였다.

사실 북한에서의 강제노동수용소란 한번 들어가면 다시는 나올 수 없는 <울타리 없는 감옥>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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