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납북인사 북한생활기 - 죽음의 세월 52회 1962. 6. 6
  이름 : 사무국 날짜 : 2011-06-06 19:19:49 조회 :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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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북인사 북한생활기 - 죽음의 歲月 52

이름 : 운영자 번호 : 103
게시일 : 2001/04/10 (화) AM 09:50:36 조회 : 27

1962년 6월 6일자 동아일보


죽음의 歲月 52


납북인사 북한생활기


우쭐된 「自進越北」
誣告한마디로 形勢逆轉하는 謀略의 連續
불모의 開墾場으로


납치되어간 저명문화인들 모두 마찬가지였다. 소위『재북평화통일촉진협의회』덕택으로 平壤에 다시 올라와 한동안은 좀 편한 생활을 했지만 그 후 모두 꼭같은 처참한 운명에 처하였다.
柳子厦는 平壤국립출판사에서 일을 하며 어떤 여자를 만나 동거하게 되었다. 그 여자는 과거 큰 상인의 딸이었다. 그래서 폭격으로 무너지기는 했지만 집이 남아있었으므로 처가살이를 하였다.
그러나 얼마 후 폐를 앓게되어 그녀가 갖고있던 재봉틀을 피복협동조합에 바치고 직접 일하여 벌어오는 돈으로 간신히 생활을 유지하였다.
어느 날 정치보위부원이 찾아와 앓아 누워있는 柳子厦와 그의 부인을 연행하여갔다. 延安파 숙청에 뒤이은 소위 남한출신 정치적 불신임자에 대한 심사에 그도 걸린 것이었다. 심사결과 그의 부인가족이 월남하였고 남동생 하나는 정치범으로 수감중이라는 것이 탄로되었다.
이로 인하여 이들 부부는 平壤에서 추방되어 咸南, 高原제 三개간사업장으로 강제노동에 보내졌다. 이곳은 과거지주, 상인, 자본가, 종교인들이 추방되어와서 불모의 땅을 자체 노동으로 개간하여 농사를 지어먹는 곳이었다. 그러나 애써 개간을 하여 어느 정도 먹고 살만해지면 또 이들은 딴 곳으로 추방되어야 하는 것이었다.
소위 柳宗烈과 李白水는 남한에 있을 때 「반동적」인 방송연출을 했다고 해서 역시 강제 노동소로 추방되었다.
그리고 비교적 馬寅尙만은 平壤에서 도서교육출판사무를 보며 그리 노동도 하지 않고 오래 머물러 있은 쪽이었다. 그러나 그도 58연도에 들어서 남한출신 반동문화인 축출선풍에 걸려 咸北淸津 제련소로 몰려났다.
이곳에서 그는 놀랍게도 李泰俊을 만났다. 당시 그는 반동작가로 몰려 각종 출판 교정원으로 전전하다가 이곳 직장 내 조그만 편집부 일을 보고있었다. 두 사람의 기쁨이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그는 李泰俊의 덕택으로 그곳 편찬조수로 있으면서 틈이 있으면 李泰俊의 집에 찾아가 이것저것 여러 가지 쓰라린 심정을 서로 나누었다. 그러나 정보원의 시선이 늘 뒤따르고 있다는 사실을 이들은 전연 몰랐다. 드디어 공장담당 정치보위부원에 의하여 종파주의자란 낙인이 찍혀 馬寅尙은 편찬 조수직에서 쫓겨나 노동판으로 보내졌고 그 후로는 서로 만나지도 못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영화계 납치 인사인 李明雨와 崔寅圭는 끝끝내 자진 월북한 許達등의 모략에 의하여 영화촬영소에서 쫓겨나 광산 노동자로 유배당하고 말았다. 분에 못이긴 이들은 자진월북한 영화인들인 許達, 金蓮實, 南官蓮등의 남한에서의 비위사실을 서면으로 폭로함으로써 분풀이를 하였다.
이로 인하여 南官蓮은 일개 지방예술극장으로 쫓겨났고 金蓮實은 국립영화촬영소에 그대로 붙어있기는 하였지만 하찮은 뜨내기역 정도를 맡는 가련한 신세가 되었다.
특히 許達은 그때 남한에서 같이 자진 월북한 막연한 친구인 金漢이 죽자 그의 아내였던 李淑을 데리고 살았기 때문에 철면피한이라는 비난이 자자하던 때였다. 기회만 노리던 괴뢰들은 이때를 포착하자 곧 문화영화책임자의 지위에서 일개부원으로 許達을 좌천시키고 잡역까지 시키게 하였다.
납치된 희극배우 李福本역시 平北鐵山광산 연예 「써클」에 유배되어 최저생활을 유지하여고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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