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납북인사 북한생활기 - 죽음의 세월 42회 1962. 5. 20
  이름 : 사무국 날짜 : 2006-12-18 15:33:28 조회 : 22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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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북인사 북한생활기 - 죽음의 歲月 42

이름 : 관리자 번호 : 75
게시일 : 2001/03/17 (토) AM 10:26:54 (수정 2001/03/17 (토) PM 07:06:29) 조회 : 32

1962년 5월 20일 동아일보에서


죽음의 歲月 42


납북인사 북한생활기


「平和統一促進協會」 추진
억지 發起人으로 百餘名 끌어놓고
「職場待遇」에도 三階級


55년 가을부터 괴뢰들은 납치인사들을 이용하기 위한 사전공작에 더욱 바빴다. 특히 11월에 들어서 비밀재판에서 남노계 괴수 朴憲永에 대하여 최후로 사형을 선고함으로써 남노계에 대한 숙청은 일단락을 지었다.

이때부터 이네들은 저명납치인사들로 하여금 정치적인 허수아비단체를 만들 준비를 서두르게 되었다. 이 단체를 만들기에 앞서 祖統에서는 우선 저명인사들 각자에 대한 생활 안정책을 세우기로 하였다. 그 첫째로 이들 인사들에게 가정을 갖게 함으로써 일체의 향수심과 남한에 두고 온 가족생각을 저버리게 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쉬운 일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대개 납치인사들은 이를 거절하고 독신으로 있기를 원하였기 때문이다.

둘째로는 봉급과 배급을 어떤 식으로 대우하느냐 하는 문제였고 셋째는 개개인의 주택을 어떤 정도로 마련해주느냐 하는 문제였다. 이 세 가지 문제를 조상에 놓고 연말부터 괴뢰당과 祖統간에 토의가 거듭되었다.

58년에 접어들자 당 중요간부 崔鏞健과 과 祖統간부 崔元澤이 趙素昻, 吳夏英등 십여명의 저명 납치인사를 비밀리에 초대하여 회의 겸 좌담회를 열었다 이 회의에서 崔鏞健은 앞으로 祖統산하에서 일할 수 있는 납북인사들의 정치단체조직을 촉구 종용하는 한편 노령이고 모두 불편할 테니 가정을 갖도록 권고하였다. 그러나 각자의 의견이 구구하였고 특히 趙素昻은 별도로 정치단체를 조직할 것 없이 祖統에서 그냥 일하도록 하는 게 좋겠다고 주장하여 결정을 못 보았다.

이때부터 祖統간부들이 매일 찾아와 권고를 하는 통에 吳夏英과 安在鴻도 마지못해 살림을 꾸몄다. 처음 吳夏英은 굳이 사양을 했으나 억지로 떼맡기다시피하여 45세 가량된 몸이 쇠약한 여자와 동거하게되었다. 그러나 동거한지 불과 몇 달이 못돼 그녀가 병석에 눕게 되어 도리어 吳夏英이 그 간호를 해야 하는 입장이 되었다. 자연 吳夏英의 심적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녀도 미안했는지 이윽고 따로 방을 얻어나갔다. 알고 보니 그녀는 폐를 앓고 있었다.

安在鴻이 얻은 여자는 35세 가량의 성격이 활발한 과부였다. 후에 안 일이지만 그녀는 다섯 살 난 딸을 딴 집에 다 맡겨놓고 시집 온 것이었다. 安在鴻은 딱하게 생각한 나머지 그 딸을 집으로 데리고 오게 하였다. 이때부터 그의 유일한 낙은 비록 자기 자식은 아니지만 이 소녀와 놀고 친자식처럼 키우는 일이었다. 그 소녀도 곧 그를 따르게 되었고 나중에는 「아버지」라고 부르게까지 되었다.

이처럼 한사람씩 가정을 이루고 나가게 되자 괴뢰들은 잠정적이나마 그들에 대한 대우를 3계급으로 논하게 되었다. 그 제 一급은 괴뢰국장급대우로 趙素昻, 安在鴻, 吳夏英등이었고 제 二급은 괴뢰부국장급으로 尹琦燮, 嚴恒燮, 趙憲永, 宋虎聲, 金孝錫 그리고 제 三급은 丘德煥, 朴寶廉, 朴勝浩, 吳正方, 張連松 등이었다.

2월달에 들어서면서부터 매일같이 회의가 거듭되었다. 재북평화통일촉진협의회를 조직하기 위한 준비 공작이었다. 조통에서는 趙素昻의 의견을 무시해가며 조속히 이를 실현하라는 당의 비밀지시에 따르느라고 여념이 없었다. 嚴恒燮은 학교를 쉬어가면서까지 이 회의에 참석하였다. 드디어 발기인 명부가 작성되었다.

처음 이 재북평화통일촉진협의회 발기인 수는 납치된 일반국회의원, 저명한 법조계, 언론계 인사까지 포섭하여 一백여명이 넘었었다. 그러나 이 발기인 명부가 괴뢰당에 상신되어 한사람씩 엄밀히 검토된 결과 四십八명만으로 낙착되었다. 그러니까 반수이상이 애초의 발기인수에서 제거되었고 말만 발기인이었을 뿐이지 괴뢰들 제 멋대로 만든 발기인 명단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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